올 하반기 출범하는 위안화 선물시장이 ‘반쪽짜리’가 될 처지에 놓였다. 중국은행 등 외국계 은행이 시장선점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지만 국내 은행들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위안화 허브’ 핵심 정책으로 구축하는 위안화 선물시장을 외국계 은행들의 전용시장으로 내주게 됐다는 지적이다.
위안화 선물시장 외국계가 독식하나
22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중국 국영 상업은행인 중국은행은 다음주 위안화 선물 매매업 인가 신청서를 금융당국에 제출키로 했다. 올 3분기 위안화 선물시장 개장을 앞두고 이달부터 통화금리에 대한 파생상품 투자매매업 인가 신청 접수가 시작된 이후 첫 신청이 이뤄지는 것이다. 중국은행 외에도 건설·농업·중국공상은행 등 주요 중국계 은행이 현재 인가 신청을 준비 중이다. 독일계 도이치은행도 신청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작 ‘안방 주인’인 국내 은행은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은행들이 이미 하고 있는 외환스와프거래(서로 다른 통화를 교환하고 일정 기간 후 약속한 선물환율에 따라 원금을 다시 교환하는 거래)를 위안화 현물거래 헤지(위험회피)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안화 선물시장 외국계가 독식하나
스와프거래는 위안화·달러 간 거래 후 달러·원 간 거래를 이중으로 해야 하는 데다 은행 수수료까지 더해져 헤지비용이 거래금액의 0.1%에 이른다. 반면 위안화 선물시장이 개설되면 은행 수수료 없이 직접 헤지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비용이 0.03%로 줄어든다. 예를 들어 3조6000억원(3월 말 기준)에 이르는 중국본토 A주 펀드 잔액에 대한 헤지비용을 36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출 수 있다는 얘기다. 선물시장을 이용하면 헤지비용을 줄일 수 있지만 위안화 거래 수요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기존 스와프거래시장을 놔두고 새로운 선물시장에 진입할 이유가 없다는 게 은행업계의 설명이다.

실제 원화와 위안화를 직접 교환할 수 있는 ‘위안화 직거래시장’이 지난해 12월 개설됐지만 무역결제 수요는 미미한 수준이다. 하루 평균 거래량이 8억8000만달러(지난해 12월)에서 19억7000만달러(3월) 규모로 증가했지만 대부분 시장조성자로 지정된 은행들끼리 사고파는 자기매매 물량이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위안화 직거래도 미미한데 선물거래는 얼마나 되겠느냐”며 “위안화 직거래 시장조성자 역할만으로도 버겁다”며 어려움을 털어놨다.

하지만 위안화 선물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으면 위안화 표시 주식연계증권(ELS) 등 다양한 투자상품이 개발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김중흥 금융투자협회 파생상품지원실장은 “스와프거래는 신용등급이 높은 은행만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자산운용사, 증권사가 낮은 헤지비용으로 다양한 위안화 상품을 내놓기 위해선 선물이라는 헤지 수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은행들의 참여가 저조하자 금융당국은 시장조성자로 참여하는 은행에 수수료 면제 등 혜택을 주는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한국거래소는 △위안화선물 거래 수수료 면제 △달러선물 거래수수료 추가 면제 △초장기 국채선물 및 단기 금리선물 허용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