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제약의 겔포스(사진)는 올해 40살을 맞는 국내 대표 위장약이다. 1975년, 당시로서는 생소한 액체 위장약으로 등장한 겔포스는 매년 15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중국에서도 큰 인기를 누리는 제품으로 성장했다. 보령제약은 1972년 3월 프랑스 제약사와 기술제휴 협약을 체결하고 3년간의 준비작업을 거쳐 1975년 6월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갔다. 맵고 짜게 먹는 게 습관화돼 있던 한국인의 식성뿐 아니라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야근, 스트레스, 음주 등으로 위장병 환자가 폭발적으로 늘던 시기였다. 겔포스는 현탁액을 뜻하는 ‘겔(gel)’과 강력한 제산 효과를 뜻하는 ‘포스(force)’가 합쳐진 이름이다. 겔포스는 과도하게 분비된 위산을 알칼리성 물질로 중화시켜 속쓰림, 더부룩함 등의 증상을 완화해준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첫해 매출은 6000만원에 그쳤다. 물약, 가루약, 알약이 전부이던 당시에 걸쭉한 현탁약은 소비자에게 너무 생소했다.

‘수사반장’ 형사들 “위장병 잡혔어”

다시 뛰는 '불혹'의 겔포스…中에 위장약 한류…13억 '쓰린 속' 달랜다
1970년대 중반은 근로자라면 누구나 이른 아침 출근해 통행금지 직전 귀가하던 중노동 시대였다. 늦은 퇴근 후 동료들과 한잔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게 근로자들의 낙이었다. 자연히 위장병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겔포스는 ‘위벽을 감싸줘 술 마시기 전에 먹으면 술이 덜 취하고 위장을 보호한다’는 입소문과 함께 날개가 돋친 듯이 판매됐다. 4년 만인 1979년 매출은 10억원에 달했다. 보령제약이 겔포스를 생산하기 위해 안양에 지은 6611㎡(2000평) 규모의 공장은 단일 제약공장 규모로는 당시 국내 최대였다. 안양공장 옥상 광고탑엔 ‘겔포스’ 딱 세 글자만 걸렸다. 1980년대 한창 인기를 누리던 MBC ‘수사반장’에서 주역을 맡았던 최불암 씨 등 유명 탤런트들을 캐스팅한 광고는 “위장병, 잡혔어!”라는 말을 최고의 인기어로 유행시키기도 했다.

국내 유일 특허 가진 위장약

겔포스의 뒤를 이어 2000년 새롭게 선보인 ‘겔포스엠’은 겔포스의 성분 및 효능효과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제품이다. 보령제약 중앙연구소에서 4년간의 연구개발과 2년여의 임상시험을 거쳐 탄생한 겔포스엠은 위보호막 형성작용이 더욱 강력해진 것이 특징이다. 인산알루미늄, 수산화마그네슘, 시메시콘을 추가 처방한 겔포스엠은 소화성 궤양 환자는 물론 변비나 설사 등의 부담 없이 복용할 수 있도록 했다. 겔포스엠은 펙틴, 한천에 인산알루미늄을 추가해 흡착, 중화작용을 강화했다. 제산효과를 더욱 높였을 뿐 아니라 위장과 관련한 부작용은 줄였다. 겔포스엠은 국내에서 판매되는 제산제 중에서는 유일하게 조성물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1980년대 큰 화제가 됐던 겔포스 광고. 철모와 나비를 소재로 이용해 ‘위장에 평화를’ 이라는 문구를 강조해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광고 직후 보안사령부에서 군장비를 매개로 한 광고는 ‘불가’하다고 통보하는 바람에 하루만에 내려야 했다.
1980년대 큰 화제가 됐던 겔포스 광고. 철모와 나비를 소재로 이용해 ‘위장에 평화를’ 이라는 문구를 강조해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광고 직후 보안사령부에서 군장비를 매개로 한 광고는 ‘불가’하다고 통보하는 바람에 하루만에 내려야 했다.
중국 수출하는 국내 약 1위로 올라서

겔포스는 외국에서도 히트했다. 1980년부터 수출한 대만에서는 제산제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한때는 점유율 95%, 모방 제품 99개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겔포스는 중국에 진출한 첫 국산 약이다. 중국과 국교 수립 첫해부터 ‘포스겔’이라는 이름으로 수출됐다. 하지만 처음부터 중국에서 인기를 끈 것은 아니다. 당시 중국은 1970년대 국내 상황과 같아서 ‘속쓰림’을 위장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냥 참고 견디면 되지 무슨 약을 먹느냐’는 분위기였다. 이 때문에 소화제는 있었지만 위장약은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했다.

첫해 수출은 30만포 분량으로 3억원 매출에 그쳤다. 중국에서는 겔포스가 전문의약품으로 지정돼 소비자에게 직접 알릴 수도 없고, 처방전을 받아도 일부 성(省)에서는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약값을 모두 환자가 부담한다. 하지만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면서 겔포스를 찾는 중국인도 급증했다.

중국 진출 12년째인 2004년에 매출 100억원을 넘기고 이후 매년 20% 이상 성장해 2014년에는 약 500억원을 기록했다. 1992년부터 현재까지 중국에서 팔린 양을 따져보면 1억3000만명의 중국인이 1포씩 복용할 수 있는 양(중국 판매 기준)이다. 지금은 중국 현지에서 생산되는 국내 제약사 제품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수출되고 있는 국산약이기도 하다.

지구 네 바퀴 감싸는 16억5700만포 판매

지금까지 국내에서 팔린 겔포스는 16억5700만포(국내 판매 기준). 한 줄로 늘어놓으면 지구를 네 바퀴 이상 감쌀 수 있는 양이다. 겔포스의 국내 제산제 일반의약품 시장점유율은 58.4%, 상표 선호도는 82%, 소비자 인지도는 98.2%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겔포스는 올해 또 한 차례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하반기 국내에서 젊은 층을 겨냥한 신제품을 준비하고 있다. 조만간 중국 현지 생산을 위한 공장도 신설할 예정이다.

중국에서 일반의약품으로 허가를 받으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최태홍 보령제약 사장은 “겔포스의 효능은 이미 세계적으로 검증이 끝났다”며 “중국 시장 확대를 위한 공격적인 투자를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