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국민들도 선거 날짜를 헤아릴 줄 안다
총선과 대선이 얼마나 남았을까. 굳이 알고 싶다면 계산기를 동원할 필요까지는 없다.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공노총)이란 단체가 홈페이지에 남은 날짜를 매일 정확히 계산해놓기 때문이다. 오늘(26일)은 총선까지 412일, 대선은 1028일 남은 날이다.

알다시피 공노총이 공정선거를 고민하는 단체는 아니다. 단지 선거가 노조원 이익에 절실할 뿐이다. “공적 연금!!! 잊지 않겠습니다!!!” 날짜 위 적어놓은 구호가 바로 공노총의 속내다. 공무원연금을 섣불리 건드렸다간 선거 때 두고 보자는 겁박인데, 이런 공갈도 없다.

‘골든타임’은 아무래도 지난 것 같다. 공노총의 ‘친절한 계산’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든다. 골든타임을 구태여 따지자면 야당의 반대로 개혁안을 국회에 상정조차 못한 작년 말이 아니었나 싶다. 선거가 없을 때 서둘러야 공무원연금 개혁을 이룰 수 있다더니 벌써 총선과 대선의 볼모가 됐다. 경제민주화와 복지 타령에 허송세월한 탓이다. 정국이 내년 총선의 영향권에 들어가면 적어도 7~8년은 개혁이 불가능하다. 2022년까지 해마다 선거가 버티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실낱 희망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4월까지 개혁안의 입법을 마무리하면 내년 1월 시행이 가능하다. 축구로 말하자면 남은 한 달이 ‘승부차기 없는 인저리 타임’인 셈이다. 국회에는 특위가, 이해당사자들 간에는 국민대타협기구가 구성됐다. 대타협기구가 3월 말까지 복수의 잠정안을, 특위가 4월 말까지 최종 단일안을 만들어내면 5월2일까지 국회 본회의를 통과시킨다는 일정도 있다. 다행이다. 하지만 그게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공무원 노조는 애초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정작 정부가 ‘공무원연금개혁국민포럼’이라는 공론의 멍석을 깔아주자 자신들이 원하는 의제가 아니라며 끝내 불참했다. 이번엔 대타협기구를 들러리라고 비난하며 공무원연금법만 다룬다면 전면 투쟁에 나서겠다고 으름장이다. 국민의 노후소득 보장을 위한 제도 개선안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은 판을 깨자는 표현과 다르지 않다. 결국 논의를 무산시키거나 시간을 때우다가 과거처럼 도마뱀 꼬리 자르기 식으로 개혁 동력을 잠재워보겠다는 계산이다.

더 가관은 야당이다. 개혁안이 지난해 국회에 상정조차 되지 않은 것은 야당이 사회적 합의체 구성에 집착한 탓이다. 공무원 노조를 대변한 결과다. 그러나 합의체 구성 이후에도 이들이 하는 일이란 여전히 발목잡기다. 여당과 정부가 각각 개혁안을 내놓았지만 야당은 여전히 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대안이 있다고 큰 목소리로 떠드는데, 사실은 안 내놓는 게 아니라 못 내놓는 것이다. 허풍인 셈이다. 개혁성이 떨어지면 국민들의 비난이 쏟아질 것이고, 개혁 강도가 높으면 공무원 노조의 주먹이 날아들 테니 말이다. 정당이라면 자신들의 공식 의견을 내고 대화로 풀어 법안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정상이다. 따져 보자.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도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실패한 개혁이다. 이제 와 공무원 뒤에 숨어 고춧가루나 뿌리고 있으니 참으로 후안무치한 태도다. 그러고도 수권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지.

공무원연금을 개혁하면 선거에 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아니다. 반드시 이긴다. 공무원 투쟁기구가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이라고 공개한 수치가 98% 개혁 반대다. 이게 무서운가. 가족 수를 곱하면 무서워진다고. 웃기지 말라. 국민이 어디 공무원만 있나. 여론조사 결과를 보라. 국민 70%가 개혁을 강렬히 원하고 있다. 공무원만 선거 날짜를 카운트할 줄 아는 게 아니다. 국민들도 총선과 대선 날짜를 헤아릴 줄 안다. 공무원연금 개혁에 실패하면 국민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공무원연금을 지속 가능하도록 해주자는 것이 개혁의 요체다. 정부 보전금 증가에 따른 국민 부담을 줄여주고, 국민연금과의 형평성 문제를 해소하자는 것이다. 그게 국가 재정을 파탄의 위기에서 구하고 국민에게 안정된 미래를 열어주는 첫 단추다. 이제 한 달이다. 나라와 국민만을 생각하라.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