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십자(사장 허은철)가 “적대적 인수합병이 아니라는 입장을 보여 달라”는 일동제약(사장 윤웅섭)의 제안을 일축했다. 이에 따라 녹십자의 이사 선임 주주 제안으로 불거진 양사의 경영권 분쟁은 오는 3월 주총에서 또 한 차례 표 대결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녹십자는 16일 일동제약에 보낸 공문을 통해 “2대 주주로서 당연한 권리인 주주 제안을 적대적 인수합병과 무리하게 결부시켜 여론몰이를 하는 것은 주주 권리를 침해하는 무리한 요구”라고 거절 의사를 분명히 했다.

녹십자는 이 공문에서 “일동제약의 발전과 주주 가치의 극대화를 위해 상호 협력을 위한 제안과 다양한 협업 기회를 모색했으나 일동제약 이사회와 경영진이 주주 이익 제고를 위해 어떤 사업 계획을 수립, 추진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조차 전혀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며 유감을 나타냈다.

양측이 주고받은 공문에는 상대 경영진에 대한 불신이 짙게 깔려 있다. 16일까지 녹십자의 입장 표명을 요구한 일동제약은 지난 9일 성명을 통해 “일동제약의 2014년 실적을 호도하면서 느닷없이 주주 제안을 하는 것은 적대적 인수합병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주장에 녹십자 관계자는 “등기이사 10명과 감사 3명 등 총 13명을 선임할 수 있는 이사 가운데 지분 29.36%를 보유한 2대 주주가 두 명의 선임을 요구한 게 무리한 것이냐”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녹십자는 주주의 당연한 권리 행사를 적대적 인수합병과 결부시켜 ‘여론몰이’를 하는 일동제약에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녹십자는 “적대적 인수합병에 대해 일절 언급한 적이 없다. 주주 제안에 법적 하자가 없는 만큼 26일 이사회를 거쳐 3월 주총에서 원칙대로 처리하겠다”며 실력 행사 의지를 밝혔다.

녹십자와 일동제약은 지난해 1월 일동제약 지주사 전환을 두고 이미 한 차례 충돌했다. 당시 녹십자와 피델리티는 일동제약의 지주사 전환 안건을 주총에서 부결시켰다. 이번 2차 격돌은 지난 6일 녹십자가 전격적으로 3월 주총에서 임기가 끝나는 일동제약의 등기이사와 감사, 사외이사 중 2명의 선임을 제안하면서 불거졌다.

업계 관계자는 “의결권 기준으로는 양사 간 격차가 1.8%로 줄어들어 이번에도 지분 10%를 보유한 피델리티가 결정권을 쥘 것”이라며 “동종 업계에서 두 차례나 주총에서 격돌한다는 것은 사실상 끝까지 가보자는 의미 아니겠느냐”고 전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