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스스로 신뢰 까먹는 법원
지난 주말 대법원 공보라인은 바쁘게 움직였다. 대법원이 토요일인 14일 이모 수원지방법원 부장판사의 사표를 수리하면서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이 일었기 때문이다. 이 부장판사는 지난 수년간 저질 인터넷 악플을 수천 개 달아왔다가 이 사실이 알려져 파문이 커지자 사표를 냈다. 사표를 수리한다는 것은 징계절차를 밟지 않겠다는 얘기다. “징계 없이 내보내는 건 부적절하다”는 지적에 대법원 공보관실은 이를 반박하는 별도의 자료를 만들어 배포하고 관련 규정을 설명했다.

법조계에서는 대법원의 처신이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하창우 대한변호사협회장 당선자는 “법관이 품위를 손상하거나 법원의 위신을 떨어뜨린 경우 법관징계법에 따라 징계할 수 있다”며 “대법원이 징계 혐의를 갖고 자체 사실조사를 하면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은 이정렬 전 부장판사가 인터넷에 올린 게시물을 문제삼아 징계한 적이 있다. 이재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법위원장은 “익명 속에 숨으면 막말 댓글도 괜찮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고 비판했다.

대법원의 해명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대법원은 “익명성이 보장되는 사이버 공간이고 자연인으로서 사생활의 영역에서 벌어진 일”이라며 “직무상 위법행위가 아니어서 사표를 수리했다”고 말했다. 만약 대법원이 이 같은 논리를 다른 과거 사건에도 적용했다면 지금 이처럼 거센 비판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법원은 자의적 기준에 따라 누구는 징계하고 누구는 징계하지 않음으로써 논란을 자초했다.

일각에서는 “대법원이 서둘러 사표를 수리함으로써 꼬리 자르기를 했다”는 말도 나온다. 대법원은 “해당 법관이 사직 의사를 철회하면 퇴직을 강제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사표를 서둘러 수리했다”고 했다. 관련 법은 판사가 기소되지 않는 이상 징계만으로 법복을 벗길 수 없도록 돼 있다. 그러나 서기호 전 판사를 재임용에서 탈락시키는 방식으로 내보낸 적이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이 사건을 통해 사법부 신뢰의 밑천이 드러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양병훈 지식사회부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