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2월12일 오후 4시25분

[마켓인사이트] '금융 종합상사' 日 오릭스, 한국 M&A시장 휩쓴다
일본계 종합금융회사인 오릭스는 스스로를 ‘금융상사’라고 부른다. ‘바늘에서 로켓까지’ 뭐든지 팔던 종합상사의 ‘금융회사 버전’이라는 의미다. 선박, 부동산 개발, 골프장 운영 등 투자 대상에 제한이 없는 것을 보면 과장된 말은 아니다. 한국시장에서도 최근 증권(현대증권) 물류(현대로지스틱스) 에너지(STX에너지) 보험(미래에셋생명) 등 특정 업종에 국한되지 않는 투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의표를 찌르는 인수전략으로도 유명하다. 현대증권과 현대로지스틱스 인수전에서는 경쟁사를 파트너로 둔갑시키는 묘수로 성공적 거래를 이끌어냈다. 협상 중인 LG실트론 지분 49%(약 7000억원 규모) 매입 건에서는 자기자금을 1000억원만 투입하는 시나리오를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오릭스가 일본의 장기 불황을 겪으면서 얻은 노하우와 자본력으로 국내 투자시장에서 급부상하고 있다”며 “부실기업을 인수하면 특혜를 받았다는 오해를 살까봐 베팅을 못하는 한국 금융회사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 일각에선 지나치게 인수 대상을 몰아붙이며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비판도 제기한다.

日 오릭스, M&A 3대 전략

[마켓인사이트] '금융 종합상사' 日 오릭스, 한국 M&A시장 휩쓴다
(1) 경쟁자를 파트너로 영입 '逆발상'
(2) 일시 자금난 기업 공략
(3) 잘 아는 산업에 집중


오릭스는 한국에서 정형화된 틀을 깬 파격적 투자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빚을 대신 갚아주고 채권단의 담보 주식을 받아가는 LG실트론 지분 인수 거래는 국내 PEF 시장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방식이다. 지난달 현대증권 인수전 당시에는 경쟁자이자 현대증권 2대주주인 자베즈파트너스를 우군으로 끌어들여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했다. 현대증권 매각 자문을 총괄했던 산업은행 관계자는 “자베즈를 파트너로 포용한 오릭스의 전략적 승리”라고 평가했다.

임병일 크레디트스위스(CS) 지점장은 “지난해 현대로지스틱스 인수전에선 현대그룹과 지분 양수도 협상을 마무리한 뒤 경쟁업체였던 롯데그룹을 끌어들여 업계를 놀라게 했다”고 말했다. 롯데는 오릭스보다 먼저 현대그룹에 현대로지스틱스를 사겠다고 제안했지만 가격 차로 협상에 실패했다. 롯데 측 자금 2275억원(지분 35%)을 끌어들인 오릭스는 현대로지스틱스 경영권을 행사하면서도 롯데그룹 계열사의 육·해·공 유통 물량까지 현대로지스틱스의 잠재 고객으로 만드는 수완을 발휘했다.

오릭스는 2002년 한화와 함께 대한생명 인수전에 참여한 것으로 한국과 첫 인연을 맺었다. 최근 2년간 국내에서 2조원이 넘는 공격적 투자를 단행했다. 동시에 STX에너지 지분 72%(25%는 그대로 보유)를 GS-LG컨소시엄에 6300억원에 되팔아 62%의 수익을 거뒀고, 미래에셋생명 우선주를 5000억원에 매각해 10.26% 수익(IRR)을 거두기도 했다.

‘팔색조’에 가까운 투자 전략을 구사하지만 오릭스는 “잘 아는 산업에 투자를 집중한다”(이종철 오릭스PE코리아 대표)고 말한다. 물류(현대로지스틱스), 증권(현대증권), 제약(셀트리온), 반도체(LG실트론) 등 일본에서 투자 경험이 있는 업종이나 향후 일본처럼 과점 시장으로 변할 곳들을 중심으로 투자한다는 것이다. 이인형 자본시장연구원 부원장은 “일본은 자산 거품 붕괴로 한국보다 최소 10년 앞서 호황과 불황의 반복을 겪었다”며 “일본계 자금이 불황에 대한 예습을 바탕으로 한국에 자신 있게 베팅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일본 자본에 대한 경계감은 오릭스의 활동 반경을 제한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릭스가 유리한 조건을 끌어내기 위해 협상 상대방을 몰아붙인다는 지적도 있다. PEF 업계 관계자는 “일본계 자금이 대형 저축은행과 대형 캐피털회사 등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며 “일본계 자금의 과감한 행보를 보는 시각 속에는 국내 금융시장 잠식에 대한 우려감도 섞여 있다”고 말했다.

박동휘/좌동욱 기자 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