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김재홍 KOTRA 사장(57)은 쌍둥이로 김재민 한양대 구리병원 부원장이 동생이다. 4남 1녀 중 둘째와 셋째 아들인 둘은 초·중·고교를 함께 다녔다. “좀 떨어져 공부하자”는 생각에 고교 2학년 때 각각 문·이과를 선택했다. 법관이 되고 싶었던 김 사장은 문과를, 동생 김 부원장은 이과를 택했다. 그러나 둘은 재수를 거쳐 다시 같은 대학(한양대)에 진학했다. 김 사장은 행정학과에, 동생은 의대에 입학했다.

김 사장은 “어쩌다 보니 동생과 계속 같은 학교를 다녔고 한때는 그게 마뜩잖기도 했지만 돌아보면 서로 의지하면서 힘이 됐던 것 같다”며 “각자 원칙과 신뢰를 갖고 일해 서로의 분야에서 나름대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2일 KOTRA 사령탑을 맡아 새로운 성공 스토리를 쓰려는 김 사장을 11일 그의 20년 단골집 곰바위에서 만났다. 곰바위는 서울 삼성동에 있는 유명한 양·대창 요리집으로 양()은 소의 위, 대창(大腸)은 소의 큰창자다.

김 사장은 “산업자원부 과장 시절부터 자주 찾은 맛집”이라며 “쫄깃한 대창이 술과 잘 어울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경제신문과 ‘맛있는 만남’을 하는데 좋은 술이 빠질 수 있느냐”며 집에서 가져온 위스키를 꺼냈다. 그는 옛 상공부 시절부터 일 잘하고 술도 센 ‘주당(酒黨)’으로 꼽혔다. 부드럽게 시작할 겸 주량을 물었다.

[한경과 맛있는 만남] 김재홍 KOTRA 사장 "뜻대로만 되지 않은 공직생활…갑작스런 인사에 사표낸 적도…"
“술은 일하기 위해 마시는 것이지 그게 주목적은 아니지요. 주량을 얘기하긴 그렇고 공직생활 31년 동안 저보다 센 사람을 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술 얘기는 쓰지 말아 주세요. 하하.”

김 사장이 상공부 사무관이던 어느 날 공무원과 출입기자단이 술 시합을 벌였다. 소주와 양주를 놓고 5 대 5로 맞붙은 1차전에서 공무원들이 패했다. 그러자 이벤트를 마련한 선배는 그에게 지원 사격을 요청했다. 다른 사무관 한 명과 함께 투입된 그는 이어진 2차 술자리를 깔끔하게 평정했다.

얘기가 한창 흥이 오를 즈음 주메뉴인 양 요리가 먼저 준비됐다. 고기판에 노릇노릇 구워진 고기를 가리키며 김 사장은 “양에는 지방이 없답니다. 많이 드세요. 이따 대창도 나오는데 맛은 있지만 콜레스테롤이 있어서 많이는 안 합니다. 그래도 이 집은 대창의 지방을 많이 손질해 좋아요”라며 먹기를 권했다.

요리를 내오던 식당 종업원도 옆에서 거들었다. “곰바위는 올해로 32년째 양·대창을 굽고 있어요. 뉴질랜드산인데 급랭해서 가져와 해동하기 때문에 싱싱합니다. 다섯개 등급 중 1등급만 쓰지요. 자랑 하나 더 하자면 찍어 먹는 소스는 고춧가루에 신선한 채소와 사과·파인애플 등 과일만 갈아 넣었어요. 어떻게 만드느냐고요? 며느리도 안 가르쳐 주는데요. 호호.”

[한경과 맛있는 만남] 김재홍 KOTRA 사장 "뜻대로만 되지 않은 공직생활…갑작스런 인사에 사표낸 적도…"
김 사장은 행시 26회로 1983년 공직에 입문했다. 사무관 초임 시절 법제처에서 잠깐 보낸 시간을 빼고는 31년 공직생활의 대부분을 상공부 통상산업부 산업자원부 지식경제부 산업통상자원부로 이름이 바뀐 산업부 계열 부처에서 일했다. 승진도 항상 동기들보다 빨랐다. 차관까지 쉼없이 치고 올라갔다. 비결을 묻는 질문에 그는 “일을 왜 하는지를 스스로 묻고 답하면 일을 하기도 쉽고 성과도 난다”고 했다.

이를 항상 후배들에게도 강조했다고 귀띔했다. “아래 직원들을 무작정 혼낼 필요가 없어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동기부여지, 다그치는 게 아닙니다. 부하들의 능력을 신뢰하고 일을 맡겨야 합니다. 왜 일을 하는지,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는지 알려주고 공유하면 됩니다.”

이른바 ‘맏형 리더십’이다. 그래서 따르는 후배가 많다. 김 사장은 1995년부터 10년 동안 과장으로 일했는데 그때 같이 일했던 사무실 직원들과의 모임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그와 함께 일한 한 후배 관료는 3년 전 스승의 날에 “김 차관님이 바로 제 인생의 스승”이라며 장문의 편지와 선물을 보냈다고 한다. 그는 “제 진심을 알아준 것 같아 큰 감동을 느꼈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지난해 7월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으로 퇴임하기까지 산업·무역·기술·통상 분야를 거치며 많은 성과를 냈다. 차세대 신성장동력산업 발굴, 국가균형발전계획 수립, 산업융합촉진법 제정, 산업융합정책 수립 등 굵직한 정책과 법안들이 그의 손을 거쳤다. 김 사장은 “많은 일을 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13년 삼성-LG 간 특허 분쟁을 대화로 풀도록 중재한 건이었다”고 했다. “해외 경쟁 업체들의 거센 공세 속에 국내 업체끼리 자존심 싸움에 세월을 낭비할 게 뻔한 상황이어서 중재에 나섰는데 결국 성과를 냈다”고 전했다.

어느 새 위스키가 바닥나고 소주에 맥주를 섞은 폭탄주가 돌기 시작했다. 그는 맥주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맛도 그렇거니와 배가 불러 술마시는 데 방해가 돼서다. 그냥 소주를 즐기지만 상대를 배려해 폭탄주를 만들었다. 맥주도 잔의 반, 소주도 잔의 반을 따르는 이른바 ‘반폭’이다. 불판에는 어느새 대창이 손질돼 얹어졌다. 부드럽고 고소한 맛의 대창을 매콤새콤한 소스에 찍어 씹으니 술이 저절로 당겼다.

폭탄주가 두세 순배 돌고 다들 불콰해질 즈음 김 사장은 속얘기를 꺼냈다. 김 사장의 부친은 그가 중학교 2학년 때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그의 가족은 생계를 위해 서울로 이사해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부친의 별세와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서울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대구에서는 항상 1등을 놓치지 않은 그였지만 성적이 예전같지 않았고 전기 진학에 실패해 후기인 중앙고에 들어갔다.

공직생활 중 사표를 쓴 얘기도 했다. 국장 시절 본인 의사를 묻지도 않고 외부기관으로 소속을 옮기는 인사가 났다. 일에서도, 처신에서도 그런 대접을 받지 않도록 열심히 했는데 서운한 생각에 며칠을 고민했다. 결국 그는 부인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은 후 사표를 냈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그 인사를 받아들이고 다른 부처로 출근했다. 그런데 얼마 안돼 해당 부처의 조직 개편으로 그가 속한 부서가 사라졌고 그는 1주일 만에 원대 복귀했다. “오랫동안 공직생활을 해보니 일이 제 뜻대로 되는 것은 많지 않더군요. 다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매순간 최선을 다해 일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알게 됐지요.” 그런 자세로 살다 보니 평가도 받고, 승진도 하고 차관까지 올랐을 뿐이지 어떤 자리를 염두에 두고 일을 한 적은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그의 이런 자세는 KOTRA 사장으로 오는 데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차관 퇴임 후 4개월 만에 KOTRA 사장에 취임했다. 더욱이 세월호 사태 후 ‘관피아’ 척결 목소리가 커지면서 고위 관료 출신의 공공기관 진출이 어려워진 상황에서다. 공모에 나섰을 때 주위에서는 어림없다고 말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KOTRA가 중소기업 수출 지원을 위한 정부출연기관이라는 점과 일에 대한 진정성, 전문성이 있다는 점을 사장추천위원들에게 설명했다.

김 사장이 취임 후 직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게 진정성이다. 왜 KOTRA에서 일하고 있고, 그 목표를 달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스로 고민해 보라는 것이다. 그는 “KOTRA는 중소기업 해외 진출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이 목적을 달성하려면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진흥공단 등 다른 중소기업 수출지원 기관들과 손잡지 않으면 안 된다. 내부적으로도 다른 부서와 대화하고 협업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이 같은 동기부여를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계란찜과 나물, 된장국으로 식사까지 마치고 그가 마지막 건배사 ‘무한도전’을 자청했다. 이 건배사 한마디에 KOTRA의 목적과 비전이 담겨 있다는 소개와 함께. “무조건 한도 끝도 없이 도와라, 전화 오기 전에.”
[한경과 맛있는 만남] 김재홍 KOTRA 사장 "뜻대로만 되지 않은 공직생활…갑작스런 인사에 사표낸 적도…"
김재홍 사장의 단골집 곰바위
32년 전통의 양·대창 전문점…기름기 적어 담백·고소


[한경과 맛있는 만남] 김재홍 KOTRA 사장 "뜻대로만 되지 않은 공직생활…갑작스런 인사에 사표낸 적도…"
서울 삼성동에 있는 양·대창 구이 전문점이다. 1984년 삼성동 봉은사 옆 큰 소나무 언덕 아래 터에 고재용·이영희 씨 부부가 ‘우직하게 한 곳만 보겠다’는 뜻으로 곰바위란 이름의 식당을 낸 것이 시초다. 지금 자리(삼성동 151-4)로 옮긴 것은 2006년이다. 지하 1층·지상 1층에 150여 좌석을 마련해 놓고 있다.

주메뉴는 특양구이(1인분 3만원), 대창구이(2만4000원)이며 꽃등심(4만6000원)과 주물럭(4만2000원)도 인기가 높다. 소의 첫 번째 위인 양은 뉴질랜드산, 대창과 고기류는 국내산을 쓴다. 점심에는 간장게장(3만~3만5000원)과 국수전골(1만6000원)을 찾는 손님도 많다. 대를 이어 음식점을 관리하고 있는 고강흠 매니저는 “다른 가게와 달리 대창에서 기름기를 최대한 제거하기 때문에 고소하고 담백한 맛을 낸다”고 소개했다. (02)552-7761

올해 420개 中企 수출…마케팅·금융 등 지원 계획

김재홍 KOTRA 사장의 역점 사업 중 하나는 1400개 내수 중소기업의 수출기업화다. 올해 목표는 일단 420개. 이를 위해 수출 지원 단체와의 협업을 강화하고 마케팅과 금융 등 지원 수단을 총동원할 생각이다. 김 사장은 내수기업의 수출기업화를 포함해 2017년까지 수출 중소기업을 10만개 이상으로 늘리고, 그중 1억달러 이상 수출기업도 400개까지 만들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박수진/강현우 기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