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만혼(晩婚)대책, 졸속은 금물
“정부가 만혼(晩婚)을 줄인다고요? 여성의 학력이 높아지고 사회 진출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현상을 정부가 어떻게 막습니까.”

지난 6일 발표된 정부의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대책 기본방향의 핵심이 ‘초혼 연령 낮추기’인 것을 보고 한 사회정책 전문가가 한 지적이다. “이젠 정부가 국민들의 결혼 시점까지 정해주려고 한다”는 네티즌들의 질타도 쏟아졌다.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만혼이 저출산 문제의 핵심이라는 정부 판단 자체엔 일리가 있다. 수많은 실증연구 결과 출산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게 바로 부모의 연령 변수다. 교육기간은 길어지고 청년 실업은 심각한 상황, 가족 형성(결혼) 시점이 미뤄지면서 생기는 사회적 손실이 꽤 크다는 얘기다. 이 시점을 당길 수 있다면 출산율을 높이는 것은 물론 나이 들어서까지 아이를 뒷바라지하고 있는 수많은 중장년들의 노후 또한 지금보다 안정될 수 있다.

문제는 방법론이다. 정부는 신혼부부용 임대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하고 결혼지원금 지급 등을 검토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연애할 여유도 결혼할 이유도 없다’는 요즘 젊은 세대들에겐 별로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1인 가구를 지원해달라. 그래야 돈을 모아 결혼할 수 있다’고 나설 수도 있다. 현재 혼인관계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동거부부나 한부모 가정들이 역차별을 받는다는 문제도 생긴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얽매이다가 자칫 출산율을 더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신혼부부에 지원을 집중하려면 저소득층 등 금전적 지원이 필요한 다른 계층과의 형평성 문제도 풀어야 한다. 모두에게 지원하기엔 정부 재정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대책의 기본방향을 내놓으면서도 자세한 계획은 9월께야 발표하겠다고 했다. 막대한 재정 부담 때문에 구체적 지원 규모를 확정 못한 탓이다.

결국 필요한 것은 결혼과 정상적인 가족이라는 범위 자체를 넓히는 것이다. 한국의 연간 낙태 추산 건수만 20만~30여만건이다. ‘정상적인 가정’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이상 새로운 대책이 나오더라도 그 대책은 또 다른 재정 낭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고은이 경제부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