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독일민법'이 베스트셀러인 이유
얼마 전 독일 아마존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다 깜짝 놀랐다. 1위가 ‘독일민법’이고 2위가 ‘독일상법’이었다. 4위는 ‘주요 세법 조항’, 7위는 ‘노동법’이었다. 딱딱한 법전이 ‘톱10’에 네 권이나 들어 있다니 믿을 수 없었다. 지난해 팔린 책을 모두 합산한 ‘2014년 종합 베스트셀러’에서도 ‘독일민법’은 2위, ‘독일상법’은 10위를 차지했다. ‘주요 세법 조항’과 ‘노동법’이 그 뒤를 이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해외 서적을 담당하는 출판에이전시 대표에게 물어봤다. 마침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참가하고 돌아온 그의 첫마디는 “독일이니까!”였다. 최근 바뀐 법들이 많았고, 이를 반영한 개정판이 잇달아 출간됐기 때문이라는데, 그렇다고 종합베스트셀러까지?

집집마다 법률서…책값도 절반

독일에서는 일반인이나 기업 경영자나 법 관련 서적을 모두 구비해 놓는다고 한다. 집집마다 법전을 두고 필요할 때마다 관련 조항을 찾아 생활에 적용한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필요한 생필품이니 책값도 저렴하다. 다른 책이 13~17유로인 반면 법률서는 5~9유로로 거의 50% 수준이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이 한국에선 칭찬일지 몰라도 독일에선 반대다. 매일 똑 같은 시간에 산책한 칸트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독일인은 분초를 지키면서 약속을 이행한다. 유치원 교육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놀이 후 정리정돈, 차례 지키기, 하루 일과표 지키기 등이다. 이렇게 교육받은 아이들은 휴지통이 없으면 쓰레기를 하루 종일 손에 들고 다닌다.

무엇보다 법과 제도가 합리적이고 현실적으로 잘 지켜지도록 만들어져 있다. 운전자들은 빨간불이 켜지면 보통 정지선까지 차 한 대가 넉넉히 들어갈 만큼 자리를 비워두고 멈춰선다. 신호등의 위치와 높이도 정지선을 어기면 신호가 보이지 않도록 설치돼 있다. 모두들 자연스레 정지선을 지키도록 시스템화돼 있는 것이다. 대신 법을 어기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도록 한다.

법은 멀고 생떼는 가까운 우리

우리는 어떤가. 정지선 지키기 캠페인을 벌이면서 사은품을 준다는데도 헛일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설치된 신호등은 준법정신을 되레 비웃는다. 어릴 때부터 보고 배우는 것도 엉터리다. 법을 지키면 오히려 손해만 본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어쩌다 걸리면 ‘재수 없게 나만…’ 하며 화를 낸다. 법은 멀고 생떼는 가깝다.

한국 사람들이 법을 가까이 하기 힘들어하는 데에는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우선 법 조문이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으로 쓰여져 있다. 웬만한 사람은 무슨 말인지 모른다. 그런데도 국회의원들은 수십개씩 법안을 찍어낸다. 새 국회가 개원하면 이전에 발의했다 자동 폐기된 법안들을 재빨리 다시 발의하면서 ‘새치기 발의’ ‘훔치기 발의’도 불사한다. 법안 가결률이 낯뜨거울 정도로 낮은 이유다.

수많은 특별법과 특례 조항으로 예외를 두는 것도 문제다. 어떤 법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형량 차이가 엄청나게 난다. 같은 행위에 유무죄가 엇갈리기도 한다. 처벌 관련 법령이 4000개를 넘은 지 오래다. 각 시도 조례를 제외한 게 이 정도다. 벌금형 이상을 받은 전과자는 1100만여명에 이른다. 전과기록이 남지 않는 과태료로 가능한 일도 형사범죄자로 만든다.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나라 법률서가 베스트셀러에 오를 날은 정녕 오지 않는 것일까.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