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사람이 함께 모여 일하는 곳
위험을 피하려는 성향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그래서 소방관이나 군인처럼 목숨을 걸고 위험을 무릅쓰는 이들은 마땅히 대우를 받아야 한다. 에볼라 파견 의료진도 마찬가지다. 누가 등을 떠민 것도 아니고 큰 보상이 따르는 골드러시도 아니다. 그래서 박수받아 마땅하다.

중소기업에도 박수받을 일이 있었다. 거창한 인류애는 아니지만 몸담고 있는 조직의 어려움을 모른 척할 수 없어 에볼라가 창궐한 그곳으로 뛰어들었다. 부산의 한 중소기업 직원들의 사연이다. 배관 이음새를 생산하는 이 회사는 아프리카 진출의 첫 교두보로 2년여 전부터 나이지리아 해양플랜트 건설에 참여해 왔다. 에볼라가 퍼진 지난해 여름, 계약상 마지막 품질검사를 위해 국내 직원을 파견해야 했다. 이 회사 최고경영자(CEO)는 고심 끝에 직원을 보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직원들이 “우리가 가겠다”며 손을 들었다. 말렸지만 그들은 뜻을 굽히지 않았고 오히려 CEO를 설득했다. 회사에서 최대한의 안전 대책을 강구한 덕분인지 모두 건강히 다녀왔고 최종 납품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나는 그 사연을 듣고 무척 감동받았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에 그렇게 헌신적인 직원들이 있다는 게 자랑스러웠다. 그 회사 CEO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직원들을 칭찬하고 다닌다. 평소 직원을 아끼고 사랑하는 CEO의 철학과 기업문화가 자리잡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요즘 회사 수익성이 좋아지는 것도 직원들이 기술개발을 열심히 해준 덕이라 여긴다. 그래서 교육이나 연수에도 아낌없이 투자한다. 직원의 자부심과 주인의식이 높을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 일의 특성이 직원의 헌신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한 중소기업 연구원으로 입사해 청색 LED(발광다이오드) 개발 등 LED 상용화에 기여한 공로로 2014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나카무라 슈지는 “미친 짓(crazy thing)을 해야 노벨상을 타는데, 대기업에선 힘들다. 중소기업으로 가라”고 했다. 중소기업은 일의 자기주도성과 성취감이 뛰어나며 창의적이고 빠른 성공도 가능하다. 창업공신이나 핵심 기술자는 정년이 없는 경우도 많다.

직원을 가족처럼 대하는 CEO와 주인의식이 강한 직원이 함께 모이면 강한 기업인 것은 분명하다. 기업(企業)은 사람(人)이 함께 모여(止) 일(業)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권선주 < 기업은행장 sunjoo@ibk.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