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1주일에 두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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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초 키우는 행복한 시간 20년
정성 들이면 자라는 게 달라져
권선주 < 기업은행장 sunjoo@ibk.co.kr >
정성 들이면 자라는 게 달라져
권선주 < 기업은행장 sunjoo@ibk.co.kr >
집에 화분이 20개 정도 되는 것 같다. 주로 동양란인데 키우기가 만만치 않다. 플로리스트가 하라는 대로 제대로 하려면 아기 보는 것보다 더 힘들다. 물주기를 터득하는 데만 3년이다. 자외선이 강하지 않은 아침 햇볕만 쬐고, 통풍 잘되는 곳에, 물의 양은 흙의 수분기를 봐서 조절해야 한다. 옮길 때도 스트레스 안 받게 흐린 날 서서히 옮기고 심지어 처음 한 달간은 화초가 몸살을 겪을 수 있으니 더 신경 써야 한단다.
늘 시간에 쫓기다 보니 물은 1주일에 두 번 정도 그냥 붓고 만다. 10분이면 끝난다. 하지만 겨울에는 베란다가 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양동이에 물을 받아서 화분을 담가 놓아야 한다. 족히 두 시간은 걸린다. 그런데 원칙대로 정성을 들이니 이 녀석도 자라는 게 다르다. 겨울인데도 꽃대가 씩씩하게 올라온다. 몸매가 살아난다고나 할까, 잎이 생기를 띠고 도톰해지며 탄력이 생긴다. 끝 부분이 까맣게 죽어가던 잎들도 제 색깔을 찾았다. 벼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실감 난다.
화분을 담그는 동안 난초를 보며 잎을 닦아준다. 음악을 들으며 책을 보기도 한다. 마음이 정리되고 몰두하는 그 시간이 그렇게 행복하고 편안할 수가 없다. 예전에 시간을 내기가 힘들어 물주기를 가족에게 맡긴 적이 있다. 어째 화초가 생기를 잃어가는 게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듯 느껴져 마음을 다시 고쳐먹었다. 그렇게 1주일에 두 시간, 행복한 시간은 이어졌다.
언제부터 화초를 키웠는지 가물가물하지만 족히 20년은 된 거 같다. 이사 갈 때면 하나씩 싸서 다녔다. 그래도 정성을 들인 만큼 반응해주는 맛에, 집안 공기를 맑게 하고 청량함이 더해지는 맛에 화초를 키운다. 식물은 참 정직하다. 슬럼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춘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겨울이든 여름이든 정성을 들이는 만큼 반응이 온다. 자기한테 잘하는 것을 느끼는 것 같다. 올라오는 꽃대에서 꽃이 피면 어떤 향이 뿜어져 나올지 기대가 된다.
권선주 < 기업은행장 sunjoo@ibk.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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