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겨울이야기
왜 그 옛날의 겨울은 늘 그렇게 추웠을까? 아마도 우리 몸속에 기름기가 별로 없었던 까닭인지 모른다.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려 마가린에 밥을 비벼 먹던 시절, 마가린은 참으로 귀하고 맛있는 음식이었다. 어머니의 빨간 내복을 어찌 잊으랴? 한땀 한땀 기운 그 빨간 내복을 나는 액자에 넣어두고 싶다. 그보다 아름다운 예술이 어디 있으랴? 요즘 지하철역 상가마다 걸려 있는 싸고 따뜻한 수면 잠옷을 볼 때마다 나는 어머니의 빨간 내복이 떠오른다. 아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엔 쓸데없이 너무 많은 물건이 넘치는 건 아닐까?

서른 살 무렵, 사랑하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뉴욕에 있었다. 한밤중에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화로 들은 순간 내가 한 일은 다음날 서울 가는 비행기 표를 예약하고, 냉장고에 잔뜩 넣어둔 고기와 생선 등을 꺼내 경비 아저씨에게 준 것이었다. 그날의 슬픔이 아무리 크다 해도 위대한 일상의 무게는 그보다 무겁다. 추운 겨울이면 나는 가끔 국민교육현장을 외우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그렇게 무거운 사명을 머릿속에 이고 지고 자라난 세대. 부모로부터 전쟁의 끔찍함을 듣고 자란 반공교육 세대, 나이는 괜히 먹는 것이 아니다. 하루 햇살이 무섭다는 말도 틀린 말이 아니다. 시간은 무서운 경험의 축적이다. 우리들의 아버지가 몇 점짜리 아버지였는지 생각한다. 배고프게 하지는 않았지만 무서운 아버지, 따뜻하지만 춥고 배고프게 했던 아버지, 중요한 건 그가 내 아버지였다는 거다.

우리 아버지는 신경이 너무 예민해 늘 잠을 못 이루셨다. 아버지를 닮아 잠 못 이루는 날, 나는 생각한다. 산다는 일은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사막을 건너는 일이라고. 언젠가 라디오를 듣다가 이런 구절이 마음에 남았다. 사막을 건너는 법은 시간을 쪼개는 일이라고. 먼 미래에 대한 걱정은 접어두고, 일단 5분 뒤를 걱정하는 일이라고.

오늘도 우리는 삶이라는 사막을 건넌다. 어쩌다 오아시스도 있겠지만 맑은 날보다는 흐린 날이 많은 사막을 건너며 모두가 한마음으로 뭉쳐 손을 잡고 건너면 어떨까 생각한다. 이렇게 나도 서서히 노인이 되리라. 어차피 노인이 많아지는 세상, 이왕이면 젊은이들이 믿고 기대고 배울 것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아직도 어려운 시절의 빨간 내복을 내다버리지 않는 내 어머니로부터 오늘도 나는 사막을 건너는 법을 배운다.

황주리 < 화가 Orbitj@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