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투자자 '깜깜이' 만든 당국은 뒷짐
“범죄를 저지르는데 금융당국이 합법적인 길을 만들어준 거나 다름없습니다.”

19일자 본지 A29면 ‘법원·금융당국, 엇갈린 해석…상장사 비상’ 기사를 본 김광중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는 “제도에 큰 구멍이 생겼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전환사채(CB)를 인수한 코스닥 상장사가 금융위원회 유권해석에 따라 공시를 생략했다가 투자자 피해가 발생해 민형사상 책임을 진 사례가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2012년 4월 코스닥 상장사 이디디컴퍼니를 인수한 새 경영진은 투자자 몰래 계열사가 발행한 150억원 상당의 CB를 인수했다. 계열사는 이렇게 빼낸 돈으로 인수할 때 빌린 대출금을 갚았다. 사실상 무자본 인수합병(M&A)을 한 것이다. 자금을 회수하지 못한 이디디컴퍼니는 자본 잠식에 빠져 2013년 상반기 상장폐지됐다. 3000명이 넘는 피해자가 발생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금융위가 법의 사전적 의미에만 초점을 맞춰 유권해석을 한 탓이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상장사는 양수하려는 자산액이 최근 사업연도 말 현재 자산 총액의 10% 이상이면 주요사항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당국은 이 사건처럼 기존 발행된 주식(CB·BW 등 포함)이 아닌 신주를 취득한 경우는 자산 ‘양수’가 아니라 ‘원시 취득’이기 때문에 대상이 아니라고 봤다. 이디디컴퍼니의 새 경영진도 당시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공시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답변을 받았다. 금감원 측은 “재무제표상 주석 등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고 했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 회사는 1분기 보고서 작성 시점이 막 지난 4월 초 인수됐고, 재무제표를 담은 반기 보고서가 발행된 8월까지는 이런 내용이 공시에서 누락됐다. 4개월 동안 경영진이 몰래 움직인 돈은 회사 전체 자산 총액의 56%가 넘는 174억원에 달했다. 법원도 공시를 하지 않은 전 대표 최모씨에게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했다.

당국의 해석대로라면 투자자들은 최장 6개월 동안 ‘깜깜이’ 상태에 놓일 수 있다.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당국은 규정을 재점검해야 한다.

정소람 지식사회부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