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탄소배출권, 유럽과 미국의 通貨전쟁
유럽의 탄소배출권 거래제는 환경이라는 새로운 영역에서 일어난, 미국 달러화와 유럽 유로화 간 통화전쟁이다. 19세기 영국은 당시 가장 중요한 자원인 석탄을 자국 화폐인 파운드로 거래하며 세계경제의 중심이 됐다. 1971년 브레턴우즈 체제가 붕괴했는데도 미화가 계속해 실질적인 기축통화의 지위를 유지한 이유는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석유대금을 미 달러로만 받은 데 있다. 가장 중요한 자원을 독점하는 통화가 기축통화가 된다.

유럽연합(EU)이 유로를 기축통화로 만들기 위해 찾아낸 자원이 탄소배출권이었다. 유럽은 유엔을 이용해 교토의정서를 끌어내고, 탄소배출권을 유가증권화해 유로로만 거래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이 제도가 유럽 탄소배출권거래제(EU ETS)다. 유럽은 미 달러를 약화시키기 위해 유엔과 교토의정서를 이용해 미국을 견제했다. 미국의 대응은 교토의정서 거부였다. 미국이 20여년간 노력한 결과 러시아, 일본, 캐나다, 뉴질랜드 등이 탈퇴하며 교토체제는 사실상 붕괴됐다. 유럽에서 사용하던 유엔탄소배출권(CER)은 30유로에서 0.05유로까지, 600분의 1 수준으로 폭락했고 거래는 사라졌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행정명령으로 탄소 배출을 감축시키는 정책으로 유럽 배출권거래제를 계속 고립시키고 있다.

배출권거래제의 취지는 탄소배출 감축이 아니라 탄소배출 감축 원가 감소에 있다. 배출감축량은 정치적으로 결정이 되고 한국은 배출예상량(BAU) 대비 30% 감축이 목표다. 감축량을 맞추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공장을 신설하면 원가가 높아지는 만큼, 거래를 통해 저렴한 배출권을 구매해 감축 원가를 끌어내리려는 게 배출권거래제의 목적이다. 예를 들어 기업 A의 탄소감축 가격은 1원, B는 10원, C는 100원이면 3t을 감축할 경우 세 기업이 1t씩 감축해 원가는 111원이다. 거래가 가능하면 B와 C는 A로부터 t당 1원에 구매할 수 있어 총원가는 3원이라는 게 배출권거래제 논리이다. 과연 그럴까. 이윤최대화가 목적인 A는 B, C의 원가가 10원, 100원임을 아는데 1원에 판매할까. 한국 최고기업들이 모인 탄소시장에서 유가증권으로 변형된 배출권을 A기업 원가인 1원에 거래할까.

글로벌 금융그룹 UBS는 유럽에서 배출권 판매이익이 탄소감축 사업에는 투자되지 않고 거래제를 이용한 기업과 증권사 몫으로 돌아갔으며 그렇게 챙긴 이익금이 2870억달러(약 300조원)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탄소감축은 완전히 실패한 것이다.

이런 탄소배출권 거래제가 도입되면서 기업들은 초비상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배출권 확보를 서두르기보다는 관망하는 게 나을 것이다. 유럽의 경우 대부분 기업이 배출권을 필요 이상으로 신청했고 한국 기업도 그럴 확률이 높다. 또 1기(2015~2017년)와 2기(2018~2020년) 사이에 배출권 차입과 이월이 가능하며 무엇보다 배출권가격 형성에 제일 중요한 국내 및 국제경기가 안 좋은 상황이다.

정부에서 할당하는 배출권 외에 기업이 사용할 수 있는 상쇄배출권이 있는데 국내 여건이 전혀 준비가 돼 있지 않다. 특히 상쇄배출권은 이미 붕괴한 유엔탄소배출권 방식을 사용하겠다 하는데 세계에서 이 방식을 선택한 나라는 유럽 외 한국과 중국 정도에 불과하다. 한국은 2020년까지 해외배출권 사용이 금지됐고 그후에도 5%로 제한돼 있다. 일본은 국내 배출권 없이 가격이 훨씬 저렴한 해외 상쇄배출권만 사용한다. 국내배출권을 고집하는 정책은 한국 기업에 또 하나의 족쇄를 채우는 일일 뿐이다. 유럽이 통화전쟁을 벌이기 위해 만든 정책을, 별 고민도 없이 도입한 게 우리 배출권 거래제다. 국내 배출권 제도는 앞으로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될 것이 분명하다.

백광열 < 연세대 기후금융연구원장 kwangyul.peck@yonsei.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