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민물장어
그해 봄에도 선운사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다. 미당이 헛걸음한 그때나 지금이나 달포쯤 더디게 피는 게 고창 선운사 동백이다.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도 간 데 없었다. 대신 풍천장어집 주인의 복분자 타령이 흐드러졌다. 절 입구 인천강변에는 식당들이 줄지어 있고, 집집마다 장어 굽는 연기가 고소했다. 일행 중 한 명이 물었다. “그런데, 풍천은 어디 있어요?”

사실 풍천(風川)은 지도에 없다. 특정 지명이 아니라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강 하구’를 통칭하는 말이다.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강 어귀에서 잡은 민물장어를 풍천장어라고 한다. 고창이 브랜드를 선점한 덕분에 유명해졌지만, 이곳에서도 요즘은 장어를 잡는 게 아니라 길러서 판다. 어린 실뱀장어를 강에 풀어 키운 양식장어가 있을 뿐이므로 풍천에는 실은 풍천장어가 없다.

그런데도 민물장어는 여전히 귀한 몸이다. 완전한 양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공적으로 산란과 부화를 할 수 없어 실뱀장어를 잡아 키워야 한다. 뱀장어로 불리는 민물장어는 장어류 중 유일하게 바다에서 나 강으로 올라가는 회류성 어류다. 민물에서 5~12년 살다 알을 낳기 위해 바다로 가서는 태평양 심해에서 산란하고 죽는다. 어린 댓잎처럼 생긴 새끼들은 어미가 살던 곳으로 회귀하다 강 가까이에서 실뱀장어로 몸을 바꾼다. 이걸 잡아 8개월 이상 키운 게 양식장어다.

양식장어에는 비타민A가 소고기의 200배나 들어 있다. 단백질 함량과 칼로리가 높고 불포화지방산이어서 성인병 예방, 허약 체질의 원기회복에도 좋다. 다만 성질이 차고 소화가 잘 안 되므로 한꺼번에 많이 먹으면 좋지 않다. 바닷장어인 먹장어(곰장어), 붕장어(아나고), 갯장어(하모)도 영양이 풍부하지만 민물장어를 따르지 못한다. 큰 것은 살이 탄탄해서 씹는 맛이 있고 작은 것은 부드러워 좋다. 소금구이를 할 때는 기름이 충분히 빠지도록 애벌구이를 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막 잡은 것보다는 몇 시간 숙성 후 구워야 감칠맛이 더하다.

1년여 전 금값으로 치솟던 민물장어값이 최근 들어 40%나 떨어졌다. 한동안 양식 부진과 항생제 소동 등으로 수급이 흔들렸던 때도 있었는데 이렇게 싼 값에 먹을 수 있다니 반가운 일이다. 더구나 어린 실뱀장어가 한국 쪽으로 유난히 많이 몰려와서 어획량이 늘어난 덕분이라고 한다. 이번 주말에는 집 부근의 민물장어 식당이나 한번 찾아볼까 한다. 멀리 선운사까지 갈 필요도 없고….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