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노사가 7개월의 협상 끝에 마련한 2014년 임금과 단체협약 잠정합의안이 그제 조합원 투표에서 부결됐다. 투표에 참가한 조합원의 66.47%가 반대표를 던졌다고 한다.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7개월 동안 71번이나 협상해 이끌어 낸 합의문이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는 점이다. 평균 사흘에 한 번꼴로 협상을 한 셈이다. 지난해 말 합의안이 나왔을 때 국민들은 19년 무분규 사업장인 현대중공업이 역시 노사 상생과 평화의 전통을 갖고 있다며 박수를 쳤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국민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조합원들은 임금 인상분(기본급 대비 2%)이 미흡했으며 회사 측에서 연봉제 도입을 추진한 것에 불만을 갖는다. 자동차와 비교할 때 기본급이 떨어지는 것도 반대표를 던지게 한 요인일 것이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3조원에 이르는 역대 최대의 적자를 본 마당이다. 대규모 해양 프로젝트의 손실이 심각하고 신규 수주 부진에 허덕이고 있다. 한국 조선업은 뜀박질하는 중국과 엔저 덕에 부활하는 일본의 틈새에서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할 위기다. 유가 하락은 불황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불과 한 달 전 13만원대였던 주가도 어제 9만9400원으로 23.5%나 급락했다. 시장에선 그만큼 현대중공업의 미래를 어둡게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위기 대응을 해도 모자랄 판에 노조가 눈앞 이익만 챙긴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현대중공업은 울산 경제를 이끄는 핵심 기업이다. 기업이 쪼그라들면 도시가 침체한다는 미국 디트로이트시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정부는 올해 최우선 과제로 노동시장의 개혁을 꼽고 있다. 지금 개혁을 하지 않으면 국가적 위기에 직면한다는 인식이 차츰 커져가고 있다. 누릴 것 다 누려온 대기업 노조는 경제살리기에 아무런 책임이 없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