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그룹이 일부 사외이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는 플랜트 부품 제조 계열사인 포스코플랜텍에 유상증자를 통해 2900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23일 포스코와 철강업계에 따르면 일부 사외이사가 지난 12일 정기이사회에서 부실 계열사 지원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보류됐던 유상증자 안건이 열흘 만에 열린 임시이사회에서 통과됐다. 포스코는 계열사의 자본 잠식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일부 재무 전문가들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지적했다. 뚜렷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대규모 자금이 투입되면 진행 중인 구조조정에 차질을 빚게 되는 데다 또다시 자금을 지원해야 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포스코는 이사회에서 충분히 논의한 끝에 일단 유상증자로 급한 불을 끄고 구조조정을 강도 높게 추진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포스코, 대주주 책임경영이냐…깨진 독 물붓기냐
○마라톤 회의 끝에 유상증자 결정

지난 22일 열린 포스코 임시이사회에서는 포스코플랜텍 유상증자 참여 여부를 놓고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오전 7시30분 시작해 오전 10시30분까지 계속됐다. 결론을 내지 못하고 오후 6시 재개한 회의가 오후 11시까지 이어졌다.

여덟 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의 끝에 유상증자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포스코가 포스코플랜텍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신주 2386억원어치를 취득하는 방식이다. 포스코플랜텍도 공시를 통해 유상증자로 2900억원을 조달한다고 밝혔다. 나머지 514억원어치 신주는 포스코건설이 인수할 예정이다.

7명의 사외이사 중 일부는 끝까지 반대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사회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반대 입장을 밝힌 사외이사들은 조선업황 부진으로 포스코플랜텍이 상당 기간 수주난을 겪을 것으로 우려했다”며 “유상증자가 지금까지 발생한 부실을 메우는 데 투입되는 만큼 회사 경쟁력이 살아난다고 확신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전했다.

포스코(34.52%) 포스코건설(7.43%) 등 포스코그룹 계열사들이 41.95%의 지분을 가진 포스코플랜텍은 2010년부터 4년간 세 차례 유상증자를 통해 2000억원의 자금을 투입했음에도 경영난을 겪고 있다. 현재 부채비율이 700%를 넘는다.

○잘못된 인수합병이 부실 키워

포스코플랜텍 유상증자 건은 포스코 이사회에서 이례적으로 보류 결정을 내릴 정도로 민감한 사안이었다. 포스코 이사회에서 안건 보류 결정을 한 건 2008년 12월 이후 6년 만이다. 그런데도 포스코 경영진이 증자를 강행한 건 포스코플랜텍의 자금 사정이 그만큼 다급해서다.

포스코 관계자는 “연내에 유상증자를 결정하지 않으면 연말 결산 때 포스코플랜텍이 자본잠식에 빠질 수도 있다”며 “이 회사가 발행한 채권에 ‘자본잠식에 빠질 시 채권을 즉시 상환한다’는 단서조항이 있어 부도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계열사가 부도를 내면 모기업인 포스코와 다른 계열사의 신용등급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계열사 부실 문제는 2010년 포스코가 조선·해양 플랜트 부품 제조사인 성진지오텍을 1600억원에 인수하면서 빚어졌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7월 견실한 철강, 화공 설비 계열사 포스코플랜텍과 합병했지만 적자 누적과 부채비율 증가로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됐다. 이번 유상증자까지 합하면 포스코그룹이 성진지오텍 인수 및 유상증자에 쏟아부은 돈만 5000억원에 달한다.

업계 관계자는 “부실 계열사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끌려가면 두고두고 모기업에 부담을 줄 수 있다”며 “증자와 별도로 근본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