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2월23일 오후 4시28분

[마켓인사이트] 내년 상반기 독자신용등급 도입…증권·캐피털사 '신용 거품' 빠진다
정부가 지난 22일 내놓은 ‘2015년 경제정책방향’에서 내년 상반기 중 독자신용등급 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기업들 다수가 그동안 모기업이나 우량 계열사의 지원 가능성을 반영한 최종신용등급과 자체 상환능력을 뜻하는 독자신용등급 간 간극이 비교적 크다는 지적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독자신용등급이 공개될 경우 모기업이나 우량 계열사의 후광을 뺀 기업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캐피털·증권사 등에 타격

국내 신용평가사는 그동안 기업의 재무적인 체력에 비해 높은 신용등급을 매기는 핵심 논리로 ‘우량 계열사의 지원 가능성’을 들었다. 문제는 이 부분에서 신평사의 자의적인 해석과 평가가 개입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 신용등급의 47%가 ‘AA급 이상’에 몰려 있다는 사실이 이런 개연성을 방증한다. 따라서 독자신용등급은 단순히 참고 지표가 하나 늘어나는 차원이 아니라 최종신용등급 거품을 걷어내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그중에서도 재무적인 체력이 약한 금융회사가 일반 제조업체보다 타격이 클 것이란 분석이다. 제조업체에 비해 정보 공개가 미흡한 상황에서 모기업의 지원 가능성을 크게 반영해왔기 때문이다. 산은캐피탈, 신한캐피탈, IBK캐피탈, KB캐피탈, JB우리캐피탈 등은 은행의 높은 지원 가능성을 반영해 ‘AA-’로 평가받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신용평가업계 관계자는 “독자신용등급제도 시행의 관전포인트는 캐피털사와 증권사”라며 “우량 금융그룹 계열이란 이유로 좋은 평가를 받았던 곳의 최종신용등급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최근 신용평가사들이 캐피털사와 중소형 증권사 전반에 대해 우려하는 보고서를 연이어 내놓은 것도 사전작업의 일환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최종신용등급과 독자신용등급 간 격차가 큰 것으로 드러날 경우 자금조달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한 보험사의 채권운용역은 “대기업이 지원을 끊은 계열사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인 만큼 독자신용등급은 의미 있는 투자 지표로 활용될 것”이라며 “최종등급과 격차가 큰 기업은 자금조달 비용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시장 전체 혼란은 적을 듯”

독자신용등급 시행이 시장 전반에 큰 충격을 줄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다. 예상보다 시행 시기가 늦어졌기 때문이다. 독자신용등급 도입 논의는 2011년 LIG건설이 발행한 기업어음(CP)이 그룹의 지원 거부로 부도가 나면서 본격화했으나 정부와 업계의 인식 차이로 연거푸 도입이 미뤄졌다.

한 신용평가사는 최근 비공개 세미나에서 최종신용등급과 독자신용등급의 격차가 2년 전엔 2단계(notch) 정도 됐지만 최근에는 0.4단계로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한 투자은행(IB) 기업평가 담당 부장은 “신용평가사들이 독자신용등급 제도 시행을 염두에 두고 최종신용등급을 떨어뜨리며 격차 축소 작업을 해왔다”며 “수년 전에 시행했다면 충격이 꽤 컸겠지만 그동안 기업들이 대비를 해왔기 때문에 타격이 덜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태호/하헌형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