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화려한 한복의 향연 볼 수있는 '상의원'
사람의 키와 몸집이 천차만별임에도 옷의 크기는 모두 하나여서 누구는 옷을 질질 끌고 다니고 누구는 자꾸 흘러내리는 옷 때문에 거추장스러워하던 시절. 이공진(고수 분)은 타고난 감각으로 실용적이면서도 예쁜 옷을 척척 지어내 궐 밖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옷을 지어준다며 양가 규수를 꾀는 등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던 공진은 어느 날 소문을 들은 왕비(박신혜)의 부름을 받고 입궐했다가 왕비에게 첫눈에 반한다.

공진은 왕비의 시종이 실수로 불태운 왕(유연석)의 면복을 하루 안에 똑같이 만들어 내고, 왕은 새 옷을 만족스러워하며 다른 옷도 손보라고 명한다.

천민 고아 출신으로 30년 동안 손가락이 짓무르도록 바느질을 거듭하며 왕실의 옷을 지어 온 상의원의 어침장 조돌석(한석규)는 6개월 뒤면 그토록 바라던 양반의 신분이 된다.

하지만 굴러 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고, 처음에 천한 옷을 짓는다고 무시했던 공진이 궁궐에서 점점 인정을 받자 조돌석은 공진에게 묘한 질투심을 느낀다.

영화 '상의원'은 조선시대 왕실의 의복을 만들던 공간인 '상의원'을 배경으로 화려한 한복의 아름다움을 스크린에 수놓는다.

사극에 처음 도전하는 고수는 다소 능글맞으면서도 따뜻한 심성의 '천재 디자이너' 공진 역을 맡아 "세 분의 전하를 모셨지만 바뀐 것은 중전마마의 가체 크기뿐이었다"며 전통을 고수하는 조돌석 역의 한석규와 연기 대결을 벌인다.

최근 끝난 드라마 '비밀의 문'에서 영조 역을 맡았던 한석규는 이번 영화에서 영조의 옷을 짓는 어침장으로 분했다.

최근 드라마에서 통통 튀는 밝은 역할을 주로 했던 박신혜는 이번 영화에서 고립무원의 처지인 중전 역을 맡아 새로운 매력을 선보인다.

박신혜의 미모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한복을 만나 한층 빛을 발한다.

'충무로 대세' 유연석은 최고의 권력에 있지만 "궐 안에서 단 한 가지라도 내 것인 적이 없었다"는 트라우마가 있는 왕을 소화하며 복잡한 내면을 폭발력 넘치는 연기로 표현해낸다.

이처럼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하지만 영화의 주인공은 사실 한복이다.

영화 속에는 1천벌이 넘는 의상이 등장하며 이중 왕비를 위한 옷만 30벌이다.

특히 청나라 사신을 위한 대형 진연에서 왕비가 화려하면서도 화려하지 않은 순백의 한복을 입고 등장하는 장면은 마치 앙드레 김 패션쇼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영화는 의상 제작비에만 순 제작비(72억원)의 15%에 해당하는 10억원을 사용했다.

한복 제작에 동원된 전문가만 50명에 달한다.

음란소설 속 다양한 체위 삽화 등으로 새로운 사극을 선보였던 한석규의 전작 '음란서생'(2006)처럼 영화는 기발한 상상과 재기 발랄함을 갖췄고, 곳곳에 깨알같은 웃음 요소를 탑재했다.

이 과정에서 영화를 맛깔 나게 살리는 것은 역시 '명불허전' 마동석이다.

그가 맡은 '판수'는 "대갈 장군에 어좁"(머리가 크고 어깨가 좁다는 속어)이지만 새로운 옷차림에 관심이 많아 궐의 유행을 선도하는 인물.
영화는 그러나 "옷에는 예의와 법도, 그리고 계급이 있어야 하는 것"이라는 조돌석과 "사람이라면 늘 편안하고 예쁜 옷을 입고 싶어하는 것"이라는 공진의 대립은 물론이거니와 남녀 간의 미묘한 사랑, 궁중 암투, 신분 상승에 대한 열망 등을 한 편에 모두 담으려다 보니 후반부로 갈수록 점차 늘어진다.

또 하나 아쉬운 것은 한석규의 캐릭터다.

'믿고 보는 배우'지만 상당수 장면에서의 조돌석은 드라마 '비밀의 문'의 영조가 연상될 정도여서 다소 혼란스럽다.

'추격자'·'늑대소년'·'음란서생' 등을 제작한 ㈜영화사 비단길이 제작을 맡았고, '남자사용설명서'로 충무로에 입성한 이원석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이원석 감독은 최근 시사회를 마친 뒤 열린 간담회에서 "질투와 두려움, 욕망 등 사람이 가진 모습들이 퍼져 나갔다가 하나로 모이는 영화"라고 소개했다.

12월 24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127분.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hanajja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