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사내하도급, 정규직 過보호가 문제다
지난 9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현대자동차 사내하도급 근로자들이 현대차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에 판결을 내렸다. ‘현대차와 사내하도급 업체 간 하도급계약에 따른 근로자 파견은 사실상 근로자 불법파견이며 사내 하도급 근로자와 현대차는 사실상 직접 고용관계에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현대차는 곧바로 상급법원에 항소했다. 반면 하청노조는 사내하도급 근로자 전원의 정규직 전환을 위한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사내하도급은 기업들이 생산량 변동에 대응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작업 또는 업무를 외부에 위탁하는 과정에서 활용된다. 인건비 절감이 사내하도급을 활용하는 중요한 동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사내하도급 또는 파견 근로자들은 저임금에 고용 불안까지 감수하는 처지가 될 수 있다. 이에 파견근로자보호법을 통해 이들을 법률적으로 보호하고 있는데 이번 서울중앙지법 판결은 이 법을 적용한 결과다.

근로자 보호는 필요하지만 보호가 강화될수록 고용 유연성은 떨어진다는 점이 문제다. 경제 상황이나 경영 여건에 따라 인력 재배치 및 근로시간 조정, 일시 해고, 임금 조정 등 제때에 고용을 조절하는 것이 고용 유연성이다. 지금처럼 경영 여건이 불확실할수록 고용 유연성은 기업 경쟁력의 원천이 된다.

국제경영개발원(IMD) 등은 정리해고 요건 등이 지나치게 까다로운 것을 한국 기업들의 주요 경영애로로 지적한 바 있다. 세계경제포럼(WEF)도 ‘2014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의 노동시장 효율성을 86위, 노사협력 수준을 132위, 해고 비용을 120위에 올려놓는 등 한국을 노동 경직성이 심한 나라로 평가했다. 그럼에도 자동차업계 강성노조들은 단체협약으로 정리해고 요건을 강화하고 생산물량 이전과 전환배치 반대를 관철했다. 그래서 생산물량에 맞춰 근로자를 전환배치하고 인기 차종 물량의 공장 간 생산을 조정하는 것은 노사합의로만 가능하다. 업계는 이런 여건이 자동차업체가 사내하도급을 활용하는 근본적인 배경이라고 설명한다. 또 우리 업계는 호황일 때도 ‘고용 조정의 어려움’ 때문에 신규 채용에 소극적인 경향이 있다.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생산성을 웃도는 고임금, 강성노조로 인한 협상 애로가 국가 전체의 고용을 줄이고 있다.

현 정부가 ‘고용률 70%’ 달성을 추구하는 상황에서 사내하도급 문제는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무엇보다 사내 하도급 노동자와 정규직 노동자 간의 보상 격차를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규직의 높은 임금수준과 과도한 고용보장을 완화하는 대신 사내 하도급근로자나 일용직에 대한 보상과 보호 수준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연공서열식 임금구조를 성과와 역량 중심 보상구조로 바꾸는 등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보상격차도 줄여야 한다. 정규직, 비정규직 간의 이동을 쉽게 해 보다 많은 고용을 창출하는 여건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최근 독일과 미국 등의 제조업 부활은 바로 그런 고용 유연성 확대노력에 힘입은 바 크다. 특히 독일은 2000년대 ‘하르츠개혁’으로 과도한 정규직 보호를 완화했고, 그래서 실업자 수를 70여만명 줄이는 데 성공했다.

정규직만을 과보호하는 제도 아래서 사내하도급 근로자는 좌절하기 쉽다. 전체 노동자를 위하는 입장에서 정규직 노조의 양보가 필요하다. 기업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근로자 간 임금 등의 보상격차를 줄이는 등 스스로 고용 유연성과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 무엇보다 국회와 정부의 노력이 절실하다. 눈앞의 인기나 단기 처방에서 벗어나 근본적으로 기업 경쟁력을 높이고 고용을 창출하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정부와 국회가 리더십을 보이면서 노·사·정 각각의 양보와 타협을 이끄는 지혜가 절실하다.

김승일 <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정책센터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