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눈] "곳간 빈 한국기업 주식 '왕따 시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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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기업은 이제 보유 현금으로 새로운 성장을 만들어 내든지, 주주이익에 환원해야만 한다."
"성장이란 꿈만 먹고 배부른 시대는 갔다. 곳간에 돈 없는 '비실비실 기업'은 도태도태될 수 밖에 없다."
올해 내내 증시에서 식지 않는 이슈는 단연 '주주정책'이다. 저성장·저금리 시대에 외국인·기관뿐 아니라 개인투자자들까지 너도나도 배당성향과 투자수익률에 집중하고 있어서다.
게다가 정부까지 기업의 부(富)에 세금을 매겨 투자, 배당, 임금을 늘리는 쪽으로 적극 유도하고 있는 중이다. 배당과 자사주 취득은 주가부양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잡는 분위기다.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조차 역성장에 '뿔난 주주'를 달래려고 통 큰 자사주 매입부터 사상 최대 수준의 배당까지 예고하고 나섰다. 국내 투자문화가 한단계 업그레이드됐다고 보는 시선이 많다. ◆ 10월 자사주 매입액 연중 최대치…11월 자사주 매입액 1조 넘길수도
연말로 다가갈수록 국내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액 규모는 신(新)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다.
20일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증시에서 자사주 체결 금액은 약 5300억원. 이는 연중 최대치다. 11월 들어서 자사주 체결 금액은 더욱 가파르게 불어나고 있다. 지난 주말(14일)까지 6500억원을 웃돌았고, 이런 속도라면 1조원 돌파도 어렵지 않다는 분석이다.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을 필두로 두산, 삼성화재, SK, NAVER, 한화생명 같은 대형주(株) 자사주 매입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고 있어서다.
장희종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분석보고서를 통해 "대규모 그룹 계열사들이 실적 부진, 환율 악재, 지배구조 개편 이슈 등으로 어느 해보다 주가 방어에 적극 나섰기 때문"이라면서도 "통상 자사주 매입은 배당과 함께 주주중시 수단 중 하나인데 미국과 일본 시장에선 기업이익이 부진할 시기에 증시상승의 주요 요인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라고 설명했다.
배성진 현대증권 연구원도 주주정책이 보편적인 투자문화로 자리잡힐 때 수급 개선 가능성에 반드시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절대적 금리수준이 낮은 상황에서 투자자들의 시선은 주주환원정책을 공개적으로 밝힌 곳이나 그 가능성을 열어둔 상장사로 쏠릴 수 있다"며 "시선과 관심은 수급 개선으로 연결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삼성전자, 현대차, 기아차, 엔씨소프트 등을 대표적인 주주정책 투자문화 선발주로 현대증권은 제시하기도 했다.
◆ 실적 부진에도 투자처 못 찾는 현금…행동주의 투자자들 "주주에게 돌려줘라"
올해 삼성전자의 내부 현금은 사상 최고치다. 하지만 2분기에 이어 3분기에도 성적표는 '어닝 쇼크'로 얼룩져 있었다. 이미 스마트폰의 성장동력이 힘을 잃고 있다는 인식은 공통적이다.
일반적으로 상장사는 보유한 현금으로 새로운 성장을 만들어 내든지, 주주이익에 기여해야 한다. '국가대표' 삼성전자 역시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일부 외국인 주주들을 중심으로 성장을 못하겠다면 그간 이익을 나눠달라는 요구가 터져나오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여름 월 스트리트 저널을 통해 페리캐피털, 악트만에셋, 아티잔파트너 등이 삼성전자에 현금보유 분의 일부를 주주들에게 환원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월 스트리트는 당시 "삼성전자는 약 600억 달러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2013년 배당금은 순이익의 7.2%에 불과해 지나치게 배당성향이 낮다"고 지적했었다. '번스타인리서치'의 마크 뉴먼 애널리스트는 이와 관련해 "올해 삼성이 약 250억 달러의 잉여 현금을 창출할 것으로 보이는데 내년 말쯤에는 현금 보유액이 1000억 달러(약 100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렇게 적극적인 주주정책을 요구하는 주주는 '행동주의 투자자'로 불린다. 아직까지 국내에서 행동주의 풍토는 척박했다. 그간 대표적인 주주 행동주의 펀드로는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 일명 장하성 펀드가 있지만 눈에 띄는 성과를 올리지도 못했다.
반면 외국계 주주 행동주의 펀드는 국내 시장에서 성과를 거둬왔다. 유명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은 2005년부터 2006년 사이 KT&G와 분쟁을 통해서 1500억원 가량의 차익을 올리며 국내 시장에서 논란을 일으켰던 장본인이다.
2014년, 국내 행동주의 풍토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화난 주주'에게 머리를 숙였고, 게임기업 엔씨소프트도 주주들의 아우성을 견디지 못하고 '올해는 이전보다 큰 폭의 주주환원을 위해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배당 확대 가능성을 내비쳤다. ◆ "현금보유 명분이 약해졌다"…"주주정책 못 펴면 증시서 도태될 수도 있다"
이은택 SK증권 투자전략팀 연구원은 '행동주의 투자자들은 어떻게 삼성전자 주가를 움직이나?'라는 최근 분석보고서에서 "주가는 이미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고 있다"며 "삼성전자와 비슷한 사례로 애플을 꼽을 수 있는데 이는 현금보유가 많다는 특징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스마트폰이라는 동일한 산업 사이클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며 "애플의 순이익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시점부터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행동이 나타났는데 고(高)성장을 유지 할 수 없다면 그 동안 벌어 놓은 현금은 주주들을 위해 써야 한다는 논리"라고 설명했다.
성장이 정체되니, 기업입장에선 현금을 보유할만한 명분이 약해질 수 밖에 없다는 게 이 연구원의 판단이다.
지금까지 '배당을 미루고 성장에 투자하던 시기'였다면 앞으론 '미래가 없으니 배당을 해야하는 시기'로 못박은 전문가도 나왔다. 특히 제조업 기반의 수출 비중이 높은 주식일수록 가장 먼저 이런 변화를 경험할 것이란 설명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스몰캡 연구원은 "투자자들은 기업이 성장을 보여주지 못하면 당연히 배당과 자사주 매입 등 주주정책을 기업에 요구한다"며 "성장의 시대에선 배당을 잠시 미루고 주가 상승으로 투자자를 만족시킬 수 있었지만, 앞으론 저성장의 시대다"라고 강조했다.
또 "코스닥 상장 중소기업이든 대기업이든 주주정책 요구를 외면할 수 없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며 "현금 많은 기업이 자사주 매입과 배당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주가상승의 이정표가 될 날이 머지 않았다는 얘기"라고 내다봤다.
외국인과 개인투자자뿐만 아니라 국내 기관이 갈수록 수익률에 민감해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는 것. 이번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 무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국민연금이 실례로 꼽힌다.
국민연금은 이에 대해 "이번 합병이 주주 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고, 현재 주가가 주식매수청구 가격 이하로 떨어져서 내린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설명했지만, 한 마디로 '합병하려면 지금보다 두 회사 주가를 15% 이상 올려야 한다'는 얘기다.
국내 기업들의 배당성향이나 배당수익률이 낮은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다만 오랫동안 수면 아래에서 떠오르지 않았을 뿐이다. 따라서 증시전문가들은 올 들어 활발해진 주주정책 중시 투자문화를 두고 "주주가 정당한 이익을 분배 받기 위해 뛰기 시작한 증시 성숙기 진입 단계로 볼 수 있고, 단기 수익 위주에서 장기투자 문화가 정착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경닷컴 정현영 기자 jhy@hankyung.com
"성장이란 꿈만 먹고 배부른 시대는 갔다. 곳간에 돈 없는 '비실비실 기업'은 도태도태될 수 밖에 없다."
올해 내내 증시에서 식지 않는 이슈는 단연 '주주정책'이다. 저성장·저금리 시대에 외국인·기관뿐 아니라 개인투자자들까지 너도나도 배당성향과 투자수익률에 집중하고 있어서다.
게다가 정부까지 기업의 부(富)에 세금을 매겨 투자, 배당, 임금을 늘리는 쪽으로 적극 유도하고 있는 중이다. 배당과 자사주 취득은 주가부양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잡는 분위기다.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조차 역성장에 '뿔난 주주'를 달래려고 통 큰 자사주 매입부터 사상 최대 수준의 배당까지 예고하고 나섰다. 국내 투자문화가 한단계 업그레이드됐다고 보는 시선이 많다. ◆ 10월 자사주 매입액 연중 최대치…11월 자사주 매입액 1조 넘길수도
연말로 다가갈수록 국내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액 규모는 신(新)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다.
20일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증시에서 자사주 체결 금액은 약 5300억원. 이는 연중 최대치다. 11월 들어서 자사주 체결 금액은 더욱 가파르게 불어나고 있다. 지난 주말(14일)까지 6500억원을 웃돌았고, 이런 속도라면 1조원 돌파도 어렵지 않다는 분석이다.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을 필두로 두산, 삼성화재, SK, NAVER, 한화생명 같은 대형주(株) 자사주 매입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고 있어서다.
장희종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분석보고서를 통해 "대규모 그룹 계열사들이 실적 부진, 환율 악재, 지배구조 개편 이슈 등으로 어느 해보다 주가 방어에 적극 나섰기 때문"이라면서도 "통상 자사주 매입은 배당과 함께 주주중시 수단 중 하나인데 미국과 일본 시장에선 기업이익이 부진할 시기에 증시상승의 주요 요인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라고 설명했다.
배성진 현대증권 연구원도 주주정책이 보편적인 투자문화로 자리잡힐 때 수급 개선 가능성에 반드시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절대적 금리수준이 낮은 상황에서 투자자들의 시선은 주주환원정책을 공개적으로 밝힌 곳이나 그 가능성을 열어둔 상장사로 쏠릴 수 있다"며 "시선과 관심은 수급 개선으로 연결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삼성전자, 현대차, 기아차, 엔씨소프트 등을 대표적인 주주정책 투자문화 선발주로 현대증권은 제시하기도 했다.
◆ 실적 부진에도 투자처 못 찾는 현금…행동주의 투자자들 "주주에게 돌려줘라"
올해 삼성전자의 내부 현금은 사상 최고치다. 하지만 2분기에 이어 3분기에도 성적표는 '어닝 쇼크'로 얼룩져 있었다. 이미 스마트폰의 성장동력이 힘을 잃고 있다는 인식은 공통적이다.
일반적으로 상장사는 보유한 현금으로 새로운 성장을 만들어 내든지, 주주이익에 기여해야 한다. '국가대표' 삼성전자 역시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일부 외국인 주주들을 중심으로 성장을 못하겠다면 그간 이익을 나눠달라는 요구가 터져나오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여름 월 스트리트 저널을 통해 페리캐피털, 악트만에셋, 아티잔파트너 등이 삼성전자에 현금보유 분의 일부를 주주들에게 환원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월 스트리트는 당시 "삼성전자는 약 600억 달러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2013년 배당금은 순이익의 7.2%에 불과해 지나치게 배당성향이 낮다"고 지적했었다. '번스타인리서치'의 마크 뉴먼 애널리스트는 이와 관련해 "올해 삼성이 약 250억 달러의 잉여 현금을 창출할 것으로 보이는데 내년 말쯤에는 현금 보유액이 1000억 달러(약 100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렇게 적극적인 주주정책을 요구하는 주주는 '행동주의 투자자'로 불린다. 아직까지 국내에서 행동주의 풍토는 척박했다. 그간 대표적인 주주 행동주의 펀드로는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 일명 장하성 펀드가 있지만 눈에 띄는 성과를 올리지도 못했다.
반면 외국계 주주 행동주의 펀드는 국내 시장에서 성과를 거둬왔다. 유명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은 2005년부터 2006년 사이 KT&G와 분쟁을 통해서 1500억원 가량의 차익을 올리며 국내 시장에서 논란을 일으켰던 장본인이다.
2014년, 국내 행동주의 풍토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화난 주주'에게 머리를 숙였고, 게임기업 엔씨소프트도 주주들의 아우성을 견디지 못하고 '올해는 이전보다 큰 폭의 주주환원을 위해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배당 확대 가능성을 내비쳤다. ◆ "현금보유 명분이 약해졌다"…"주주정책 못 펴면 증시서 도태될 수도 있다"
이은택 SK증권 투자전략팀 연구원은 '행동주의 투자자들은 어떻게 삼성전자 주가를 움직이나?'라는 최근 분석보고서에서 "주가는 이미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고 있다"며 "삼성전자와 비슷한 사례로 애플을 꼽을 수 있는데 이는 현금보유가 많다는 특징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스마트폰이라는 동일한 산업 사이클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며 "애플의 순이익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시점부터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행동이 나타났는데 고(高)성장을 유지 할 수 없다면 그 동안 벌어 놓은 현금은 주주들을 위해 써야 한다는 논리"라고 설명했다.
성장이 정체되니, 기업입장에선 현금을 보유할만한 명분이 약해질 수 밖에 없다는 게 이 연구원의 판단이다.
지금까지 '배당을 미루고 성장에 투자하던 시기'였다면 앞으론 '미래가 없으니 배당을 해야하는 시기'로 못박은 전문가도 나왔다. 특히 제조업 기반의 수출 비중이 높은 주식일수록 가장 먼저 이런 변화를 경험할 것이란 설명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스몰캡 연구원은 "투자자들은 기업이 성장을 보여주지 못하면 당연히 배당과 자사주 매입 등 주주정책을 기업에 요구한다"며 "성장의 시대에선 배당을 잠시 미루고 주가 상승으로 투자자를 만족시킬 수 있었지만, 앞으론 저성장의 시대다"라고 강조했다.
또 "코스닥 상장 중소기업이든 대기업이든 주주정책 요구를 외면할 수 없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며 "현금 많은 기업이 자사주 매입과 배당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주가상승의 이정표가 될 날이 머지 않았다는 얘기"라고 내다봤다.
외국인과 개인투자자뿐만 아니라 국내 기관이 갈수록 수익률에 민감해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는 것. 이번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 무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국민연금이 실례로 꼽힌다.
국민연금은 이에 대해 "이번 합병이 주주 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고, 현재 주가가 주식매수청구 가격 이하로 떨어져서 내린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설명했지만, 한 마디로 '합병하려면 지금보다 두 회사 주가를 15% 이상 올려야 한다'는 얘기다.
국내 기업들의 배당성향이나 배당수익률이 낮은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다만 오랫동안 수면 아래에서 떠오르지 않았을 뿐이다. 따라서 증시전문가들은 올 들어 활발해진 주주정책 중시 투자문화를 두고 "주주가 정당한 이익을 분배 받기 위해 뛰기 시작한 증시 성숙기 진입 단계로 볼 수 있고, 단기 수익 위주에서 장기투자 문화가 정착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경닷컴 정현영 기자 j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