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와 최근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으로 기울었던 월가의 금융거물들이 이제는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게로 발길을 옮기고 있다. 빌 클린턴 행정부 때 재무장관을 지낸 친(親)월가 성향의 로버트 루빈 미국 외교협회 공동의장과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가 힐러리와 월가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월가 큰손들, 이번엔 민주 힐러리에 '베팅'
○힐러리에 베팅한 골드만삭스

2012년 대선 때 밋 롬니 공화당 후보를 지지했던 골드만삭스의 ‘전향’이 가장 돋보인다. 작년 말부터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CEO)는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가 설립한 자선재단인 ‘클린턴 글로벌 이니셔티브’ 주최 행사의 단골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다. 힐러리 역시 골드만삭스가 주최한 ‘1만명 여성 이니셔티브’ 행사에서 블랭크페인과 활짝 웃는 얼굴로 얘기하는 장면이 언론에 포착되기도 했다.

미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거번먼트 삭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관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골드만삭스가 힐러리 캠프로 기울고 있다”며 대형 은행들이 돈을 들고 힐러리를 찾아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해에 이미 수백만달러를 클린턴 재단에 기부했다. 대형 사모펀드인 칼라일그룹과 KKR도 초청 연설 등을 통해 힐러리에게 수십만달러의 강연료를 ‘기부’하고 있다. 제임스 고먼 모건스탠리 CEO, 제임스 다이먼 JP모간 CEO 등도 힐러리 지지자다.

골드만삭스를 비롯해 월가는 유대계가 잡고 있다. 이란의 핵개발 저지를 둘러싸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이스라엘의 관계가 껄끄러워졌다. 클린턴 전 장관 밑에서 부장관을 지낸 토머스 니데스 모건스탠리 부회장이 힐러리 캠프와 월가의 소통창구를 맡으면서 이스라엘 정부와도 관계 복원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식통은 “월가와 가까운 서머스 전 장관도 힐러리 캠프에 합류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월가가 힐러리로 돌아선 이유?

월가는 통상 유력한 후보에 베팅한다. 권력은 기부자에게 쉽게 등을 돌리지 않는다는 속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공화당이 상대적으로 친시장적이고 친기업적이어서 전통적으로 공화당 선호도가 높다. 그러나 2006년 중간선거(조지 W 부시 대통령) 때 민주당으로 돌아섰다. 이라크 전쟁에 따른 피로감과 재정적자 악화 등이 배경이었다. 부시 행정부가 금융위기를 불러왔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2008년 대선에서도 민주당(오바마)을 지지했다. 그러나 민주당과 월가의 밀월은 오래가지 못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대형은행을 ‘살찐 고양이’에 비유하며 ‘볼커 룰’ 등 규제를 강화하자 월가는 2012년 대선 때 롬니 공화당 후보를 밀었다.

월가가 힐러리 캠프로 돌아서는 것은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데다 그가 알려진 것과 달리 ‘반(反)월가 성향의 포퓰리스트’가 아니라 실용주의 관점을 갖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란 분석이다. 힐러리 캠프의 한 관계자는 “클린턴 전 장관은 월가와 미국 기업이 성장하면 미국 모두에 이익이 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