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울산의 눈물'은 없어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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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위에 안주한 現代重의 위기
中 추격 따돌릴 시간 많지 않아
노조, 회사의 반성에 귀 기울여야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中 추격 따돌릴 시간 많지 않아
노조, 회사의 반성에 귀 기울여야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신문에 실린 사진 한 장. 갓 취임한 최고경영자(CEO)가 출근길에 우산도 없이 가랑비를 맞고 있다. 웃는 얼굴로 손을 내밀지만, 모자를 눌러쓴 근로자들은 눈조차 마주치지 않으려는 모습이다. 냉랭한 분위기다. 이 회사의 지난 2분기 실적은 1조1037억원 적자. 회사는 적자투성이고, 노사는 팽팽한 긴장 관계에 놓여 있다. 세계 1위의 조선업체, 현대중공업의 모습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뿐이다.
회사가 늘 대규모 이익을 내고 근로자들에게 뭉텅이 성과를 나눠줄 수 있다면 무슨 걱정이겠는가. 그래서 가능했던 것이 현대중공업의 무분규 19년이다. 하지만 이제 그 구조는 무너졌다.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회사는 적자의 늪에 빠졌고, 근로자들은 한꺼번에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는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조선업체들은 상선 발주가 줄어들자 드릴십 리그선 부유식원유저장설비 등 해양플랜트 쪽으로 서둘러 눈을 돌렸다. 배만 지어도 충분히 먹고산다던 현대중공업을 제외하곤 말이다. 세계 1위 기업의 자만이었다. 살아 움직이는 것이 시장이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초조해진 현대중공업이 해양플랜트 시장에 본격 진출한 게 고작 3년 전이다.
고질병은 그때 터졌다. 돈을 벌어주던 범용선에 특화된 회사 구조가 따라주질 못했다. 공정은 뒤죽박죽됐고 시스템은 엇나갔다. 선주들은 수시로 스펙 변경을 요청했지만 기술과 경험 부족에 대응이 쉽지 않았다. 공기는 한없이 늘어지고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수익성을 무시한 마구잡이식 수주도 한몫했다. 이익을 낼 수 없는 구조에 빠져드는 건 순식간이었다.
근로의식도 망가졌다. 현대중공업 선박은 묻지도 않고 가져간다던 선주들이 부실한 마무리와 청소 불량에 불만을 쏟아놓는 지경이 됐다면 믿겠는가. 혁신의 부재, 마구잡이식 수주, 타성에 젖은 근로의식에 경쟁력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세계 1위는커녕 국내 3위에 불과하다는 자조 섞인 푸념이 나오는 이유다.
경고음은 곳곳에서 울린다. 지난달 국가별 조선 수주 통계를 보면 중국이 확고한 1위를 굳혀가고 있고 일본이 2위 자리에 앉았다. 일본에 2위 자리를 내준 건 올 들어 세 번째다. 이러다 3위가 고착화되는 건 아닌지. 일본은 최첨단 기술을 배경으로 친환경·고효율 선박과 선종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엔저 훈풍까지 불어 일본 주요 조선소가 작년부터 올해 중반까지 수주한 배가 무려 400여척이다. 중국은 이미 턱밑에 왔다. 국내 조선사들이 장악하던 초대형 컨테이너선에 이어 드릴십에도 진출했다. 샌드위치가 따로 없다.
말로만 비상경영은 아닌 듯싶다. 5년 전 은퇴한 최길선 회장이 현장에 복귀하고, 현대오일뱅크를 혁신으로 정상화시킨 권오갑 사장이 긴급 투입됐다. 260명 임원 전원이 일괄사표를 냈다. 적어도 3분의 1은 회사를 떠나야 하는 모양이다. 회사의 개혁 의지는 과거와 사뭇 달라 보인다. 그럴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노조는 뽑은 칼로 무엇이든 베겠다는 태세다. 그러나 노조가 지금 파업에 나설 때인지는 생각해볼 일이다. 한국이 조선 분야에서 세계 1위 자리에 앉아있을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지금 같으면 5년? 아무리 조선기자재벨트가 잘 구축돼 있다 한들 흔들리기 시작하면 주도권은 바로 중국으로 넘어갈 것이다. 무분규 기록을 이어간다는 것이 큰 의미는 아닐 수 있다. 그러나 회사의 변화 시그널에 노조가 응답하지 않는다면 어떤 결과가 이어질지는 신중히 고민해봐야 한다.
‘말뫼의 눈물’은 현대중공업 육상건조시설 한복판에 자리 잡은 골리앗 크레인의 별칭이다. 스웨덴 말뫼의 세계적 조선업체 코쿰스가 문을 닫으며 내놓았는데, 그걸 현대중공업이 2002년 단돈 1달러에 사들였다. 말뫼 주민들은 크레인이 배에 실려 바다 멀리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한없이 아쉬워했고 스웨덴 국영방송은 그 장면을 장송곡과 함께 내보내면서 ‘말뫼의 눈물’이라고 했다고 한다. ‘말뫼의 눈물’이 언젠가 ‘울산의 눈물’이 되어 울산을 떠나지는 않을지. 똘똘 뭉쳐도 쉽지 않은 여건이다. 괜한 걱정이 아니다. 노조가 귀 기울여줬으면 한다. 시간은 많지 않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회사가 늘 대규모 이익을 내고 근로자들에게 뭉텅이 성과를 나눠줄 수 있다면 무슨 걱정이겠는가. 그래서 가능했던 것이 현대중공업의 무분규 19년이다. 하지만 이제 그 구조는 무너졌다.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회사는 적자의 늪에 빠졌고, 근로자들은 한꺼번에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는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조선업체들은 상선 발주가 줄어들자 드릴십 리그선 부유식원유저장설비 등 해양플랜트 쪽으로 서둘러 눈을 돌렸다. 배만 지어도 충분히 먹고산다던 현대중공업을 제외하곤 말이다. 세계 1위 기업의 자만이었다. 살아 움직이는 것이 시장이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초조해진 현대중공업이 해양플랜트 시장에 본격 진출한 게 고작 3년 전이다.
고질병은 그때 터졌다. 돈을 벌어주던 범용선에 특화된 회사 구조가 따라주질 못했다. 공정은 뒤죽박죽됐고 시스템은 엇나갔다. 선주들은 수시로 스펙 변경을 요청했지만 기술과 경험 부족에 대응이 쉽지 않았다. 공기는 한없이 늘어지고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수익성을 무시한 마구잡이식 수주도 한몫했다. 이익을 낼 수 없는 구조에 빠져드는 건 순식간이었다.
근로의식도 망가졌다. 현대중공업 선박은 묻지도 않고 가져간다던 선주들이 부실한 마무리와 청소 불량에 불만을 쏟아놓는 지경이 됐다면 믿겠는가. 혁신의 부재, 마구잡이식 수주, 타성에 젖은 근로의식에 경쟁력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세계 1위는커녕 국내 3위에 불과하다는 자조 섞인 푸념이 나오는 이유다.
경고음은 곳곳에서 울린다. 지난달 국가별 조선 수주 통계를 보면 중국이 확고한 1위를 굳혀가고 있고 일본이 2위 자리에 앉았다. 일본에 2위 자리를 내준 건 올 들어 세 번째다. 이러다 3위가 고착화되는 건 아닌지. 일본은 최첨단 기술을 배경으로 친환경·고효율 선박과 선종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엔저 훈풍까지 불어 일본 주요 조선소가 작년부터 올해 중반까지 수주한 배가 무려 400여척이다. 중국은 이미 턱밑에 왔다. 국내 조선사들이 장악하던 초대형 컨테이너선에 이어 드릴십에도 진출했다. 샌드위치가 따로 없다.
말로만 비상경영은 아닌 듯싶다. 5년 전 은퇴한 최길선 회장이 현장에 복귀하고, 현대오일뱅크를 혁신으로 정상화시킨 권오갑 사장이 긴급 투입됐다. 260명 임원 전원이 일괄사표를 냈다. 적어도 3분의 1은 회사를 떠나야 하는 모양이다. 회사의 개혁 의지는 과거와 사뭇 달라 보인다. 그럴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노조는 뽑은 칼로 무엇이든 베겠다는 태세다. 그러나 노조가 지금 파업에 나설 때인지는 생각해볼 일이다. 한국이 조선 분야에서 세계 1위 자리에 앉아있을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지금 같으면 5년? 아무리 조선기자재벨트가 잘 구축돼 있다 한들 흔들리기 시작하면 주도권은 바로 중국으로 넘어갈 것이다. 무분규 기록을 이어간다는 것이 큰 의미는 아닐 수 있다. 그러나 회사의 변화 시그널에 노조가 응답하지 않는다면 어떤 결과가 이어질지는 신중히 고민해봐야 한다.
‘말뫼의 눈물’은 현대중공업 육상건조시설 한복판에 자리 잡은 골리앗 크레인의 별칭이다. 스웨덴 말뫼의 세계적 조선업체 코쿰스가 문을 닫으며 내놓았는데, 그걸 현대중공업이 2002년 단돈 1달러에 사들였다. 말뫼 주민들은 크레인이 배에 실려 바다 멀리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한없이 아쉬워했고 스웨덴 국영방송은 그 장면을 장송곡과 함께 내보내면서 ‘말뫼의 눈물’이라고 했다고 한다. ‘말뫼의 눈물’이 언젠가 ‘울산의 눈물’이 되어 울산을 떠나지는 않을지. 똘똘 뭉쳐도 쉽지 않은 여건이다. 괜한 걱정이 아니다. 노조가 귀 기울여줬으면 한다. 시간은 많지 않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