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난공불락, 약사 카르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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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주민 삼삼오오 모이던 약국
사랑방 기능하며 정치력 강화
약사 이권 철옹성처럼 굳어져
약 배송·편의점 상비약 확대
기득권 반대 막혀 번번이 좌절
환자·국민 위해 규제 풀어야
이지현 바이오헬스부 차장
사랑방 기능하며 정치력 강화
약사 이권 철옹성처럼 굳어져
약 배송·편의점 상비약 확대
기득권 반대 막혀 번번이 좌절
환자·국민 위해 규제 풀어야
이지현 바이오헬스부 차장
20여 년이 지났다. 약국의 정치 플랫폼 기능이 여전한지에 대해선 이견이 있지만 ‘약사와의 싸움에선 이길 수 없다’는 말만은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 비대면 약 배송, 편의점 상비약 판매 등 약사 기득권이 걸린 정책은 번번이 ‘누더기 제한’을 달아 반쪽 신세가 되고 만다. 직능 간 갈등이 활화산처럼 터져 나오는 보건의료계 상황을 고려하면 ‘길고 긴’ 생명력이다.
지난 2일 비대면 진료 허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도 마찬가지다. 국내에서 의사와 환자 간 첫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이 시작된 것은 2000년. 그동안 유비쿼터스(U)-헬스, 원격의료 등으로 이름을 바꾸며 ‘정치적 공격’을 피해 온 비대면 진료는 38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국가 중 가장 늦게 한국에서 ‘불법’ 신세를 벗어났다. 2010년 첫 법안이 제출된 지 15년 만이다. 20여 년간 비대면 진료가 허용되면 ‘의료는 영리화할 것’이라고 실체 없는 주장만 하던 정치인들이 뒤늦게 깨달음을 얻은 게 다행일 정도다.
하지만 여전히 약 배송은 숙제로 남았다. 의료법을 뒷받침할 약사법이 바뀌지 않아서다. 약 배송 대상은 섬·벽지 거주자, 장기요양 수급자, 등록장애인, 1·2급 감염병 확진자, 희소질환자처럼 기존 시범사업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매번 같은 약을 처방받는 만성질환자조차 의사에게 비대면 진료를 받은 뒤 약을 사러 직접 약국에 가야 한다. 환자 불편을 줄인다는 법 취지를 고려하면 ‘난센스’다. OECD 국가 중 약 배송을 원칙적으로 금지한 나라는 한국과 튀르키예뿐이다. 미국에선 제약사가 직접 연 온라인 약국에서 약을 직배송하고 유통 비용을 줄여 약을 싸게 공급하는 게 일상이 되고 있다. 한국에선 꿈도 못 꿀 일이다.
늦은 밤 약을 사러 헤매는 환자를 돕기 위해 마련한 ‘편의점 상비약’ 제도도 사실상 답보 상태다. 편의점에서 해열·진통제, 감기약, 소화제, 파스 등 상비약 13종류를 팔게 된 것이 2012년이다. 13년이 지났지만 품목은 요지부동이다. 허용 품목 중 일부가 생산 중단돼 판매 가능한 상비약이 줄고 있지만 재논의 움직임은 없다. 상비약을 늘려달라는 국민 요구가 빗발치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미국 일본 등에선 일반의약품도 약사 상담 없이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약사들은 약을 환자에게 배송하면 상하거나 배송 사고가 날 수 있다며 반대한다. 이미 ‘새벽배송’ ‘맞춤 배달 서비스’가 생활의 일부로 자리 잡은 걸 약사들만 모르는 듯하다. 편의점 판매 약이 늘면 국민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과 달리 편의점 약 탓에 생긴 사고는 제로에 가깝다. 편의점에선 근육통에 붙이는 파스조차 1인당 하나밖에 살 수 없다. 이마저도 신분증까지 확인하는 검증 절차를 거친다. 반면 해외 보따리상이 약국을 다니며 약을 매점매석하는 사례는 수시로 발생하고 있다. 오남용 위험은 제약 없이 약을 파는 약국이 더 클 것이란 주장까지 나오는 이유다.
현실이 이런데도 개혁은 요원하다. 약 배송을 허용한 약사법 개정안은 언제 통과할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정치권은 물론 정부에서도 “상비약이 확대되면 오남용이 늘 것”이란 주장이 나온다. 겹겹이 세운 안전망 덕에 오남용 위험은 크지 않다는 게 확인됐지만 약사들의 주장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정책은 환자와 국민을 향해야 한다. 카르텔을 깨는 게 그 시작이다. 특정 직역에만 예외가 있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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