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미국산 석유
에드윈 드레이크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타이터스빌 지하 21m에서 유정을 뚫은 것은 1859년이었다. 드레이크는 이 기름이 고래기름을 대체해 세상을 환하게 밝힐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10년 동안 미국 전역에서 3000개의 유정이 뚫렸고 대부분 원유는 수출됐다. 1869년 미국 2대 수출품 중 하나였다. 물론 대부분 영국으로 향했다. 펜실베이니아엔 원유 수출을 위해 철도가 깔렸고 수출항인 피츠버그에는 사람들이 몰렸다. 당시 오하이오에는 정제 업체들이 많이 생겨났다. 1870년 이들 정제기업을 매수해 주식회사 스탠더드오일을 세운 인물이 바로 록펠러다. 불과 설립 8년 뒤엔 스탠더드오일이 미국 석유 정제 능력의 90%를 차지할 만큼 록펠러의 경영수완은 남달랐다.

채굴기술이 안정되자 미국 대학들은 석유공학과를 세우고 채굴된 원유를 어떤 용도로 쓸 것인지 연구하기 시작했다. 1912년에는 현대식 증류법이 개발됐고 1914년에는 페놀 수지가 생산됐다. 가솔린 기술도 등장했다. 헨리 포드가 1913년 자동차를 대량 생산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혁신 덕분이었다. 역사에서 ‘현대(modernity)’가 시작했고 미국의 시대가 열렸다.

생산에 비해 석유 소비는 더 빠르게 증가했다. 1940년에 미국의 석유 소비량은 세계 소비의 60%를 차지했다. 중동 석유가 미국의 시야에 들어온 것도 이때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결성되고 1970년대 1·2차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미국의 에너지 정책은 크게 변한다. 결국 1975년 미국은 자국산 석유수출을 금지하는 역외수출금지법안을 시행했다.

지난달 여수항을 통해 미국산 초경질유(콘덴세이트) 40만배럴이 들어왔다고 한다. 39년 만에 수출금지가 풀린 것이다. 이번주에는 알래스카산 원유 80만배럴도 도착할 예정이다. 클린턴 정부가 알래스카를 석유금수 예외 지역으로 정했을 때 잠시 들어온 이후 14년 만이다. 미국이 다시 석유 수출국으로 도약하는 패러다임의 대전환이다. 셰일 혁명 덕분이다. 이미 지난 8월 미국의 산유량은 하루평균 1150만배럴로 사우디아라비아와 거의 같은 수준이다. 세계 제1의 산유국은 시간문제다. 미국이 세계 유가를 좌지우지할 것이라는 소리가 벌써 들린다.

미국은 정작 공식적으로 수출을 재개하지는 않았다. 유럽이 미국산 석유를 도입할 수 있도록 무역협정(TTIP)을 맺게 해달라고 아우성이다. 미국과 일찌감치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한국은 지금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오춘호 논설위원 ohhc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