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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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증시가 글로벌 경기부진에다 지정학적 리스크로 사방이 꽉 막힌 '사면초가'다. 3분기 실적 시즌이 다가왔지만, 애널리스트(기업분석가)의 실적 하향 조정은 멈추지 않고 있다.

이익의 변동성이 커진 탓에 상장기업들의 주가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해외 진출로 성장엔진을 확보하기 위한 투자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 한 달 간 해외 진출社 10여곳 달해…'주가 랠리' 등 시장 즉각 반응 분위기

3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중순 이후로 최근 한 달 동안에만 해외진출을 발표한 상장사는 10곳을 웃돈다. 중국과 베트남이 주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인도네시
아와 터키, 네덜란드, 사우디아라비아, 필리핀 등도 눈에 띈다.

시장은 즉각 반응을 보였다.

전날 중국 합작법인 설립을 발표한 엘티씨의 주가는 이날 장중 상한가(가격제한폭)로 치솟았다. 닷새 만에 급반등으로, 8월 이후 떨어진 주가를 모두 만회했다. 이곳은 디스플레이 제조공정용 박리액 생산업체다.

키움증권 김병기 연구원은 "이번 합작법인 설립으로 중국 디스플레이 소재 시장 공략을 위한 거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국내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른 상황에서 성장의 돌파구를 찾기 위한 시도라서 아주 긍정적"이라고 분석했다.

엘티씨는 29일 공시를 통해 중국 KIMSCO그룹과 함께 자본금 1500만 달러 규모의 합작사를 설립, 이 중 735만달러를 투자해 49%의 지분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코리아나화장품의 주가도 '중국 진출'이란 한 마디로 장중 한때 11% 이상 뛰어오르며 급등세다.

코리아나는 중국 천진법인의 공장을 신축하려고 약 80억 원을 금융기관에서 차입, 이 중 62억 원을 코리아나화장품천진유한공사 공장 설립에 투자키로 했다고 공시했다.

코리아나천진유한공사는 중국 현지에 공장을 운영하면서 화장품 제조자개발생산(ODM) 및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사업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금양은 발포제를 주력으로 하는 정밀화학 전문업체로 알려진 곳으로, 지난 23일 중국 신설법인을 세운다고 발표했다. 자기자본 대비 5.58%에 해당하는 25억 여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금양은 "이번 진출은 원가 경쟁력을 높이고 사업의 효율성을 증대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코닉스의 경우 지난달 말 베트남 시장 진출을 선언한 곳이다. 세코닉스는 스마트폰 카메라 렌즈를 생산하기 위해 신규 법인과 공장을 동시에 설립할 예정이다.

세코닉스가 베트남 법인에 투자하는 규모는 약 153억 원으로 자기자본 대비 15%에 가깝다. 새 공장은 내년 1분기에 완공돼 본격적으로 양산을 시작하게 된다.

이 회사의 주가그래프는 베트남 진출 발표 이후 꾸준한 상승 곡선을 그리며 직전 저점(1만5000원, 6월말) 대비 20% 가량 상승률을 나타내고 있다.

스틸앤리소시즈는 올 연말 베트남 법인을 설립한다. 이 법인은 베트남 현지 스크랩 가공시설 등을 운영하기 위한 것으로, 대우인터내셔날과 베트남 스틸 등(Vietnam Steel Corporation, Ho Chi Minh City Metal Corporation)과 공동출자한다.

터키에서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려고 비행기를 탄 이원컴포텍은 15억 원을 들여 현지 법인을 세웠다.

◆ 해외법인 시설확장·현지기업 지분확보 방식도 눈길

한솔제지는 해외 자회사와 함께 네덜란드 현지 기업(Telrol B.V)에 210억 원을 투자, 50.93%의 지분을 확보한 경우다. 한솔제지는 "유럽 라벨 컨버팅 시장에 뛰어들기 위한 투자"라며 "감
열지 생산 가공과 유통 일관화 체제 구축을 통해 유럽지역에서 시장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동일금속의 경우 인도네시아 계열사에 15억 원을 투입, 시설을 확장하기로 결정했다. 수주 증가에 따른 물량 증대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동일금속은 지난주 이에 대해 "원가경쟁력을 높이려는 시설확장을 위한 현금출자"라며 "물량증대에 대비하기 위한 선제적 투자"라고 설명했었다.

세우글로벌은 베트남 자회사(SEWOO GLOBAL VIETNAM Ltd.)의 재무구조를 개선하려고 약 86억 원을 투입한다고 이달 초 공시했다. 이는 자기자본 대비 28%를 웃도는 적지 않은 규모다.

이들 상장사의 적극적인 해외진출 배경은 매출 다각화를 통한 외형 확대가 주요 목적이란 평가가 상당수다. 또 상장사에 대한 정부의 투자, 배당, 고용 압력도 무관하지 않다는 진단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애널리스트는 "정부의 초과 유보에 대한 과세 방침이 정해지면서 기업들이 자본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분위기"라며 "앞으로 투자, 배당 압력은 더 거세질 것인데다 실질
적인 마이너스 금리 국면에서 자산의 가치도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태성 미래에셋증권 스몰캡 팀장은 "해외로 진출하는 시도는 국내 시장의 의존도를 낮추고, 매출 안정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면서도 "다만 해외시장 진출이 곧 성공이란 얘기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해외시장 진출 이후 안정적인 실적 창출로 연결되어야 중장기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따라서 해외진출 발표 직후 신(新)사업 성공 기대감 등으로 주가가 단기에 오를 수도 있지만, 펀더멘털(기초체력)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실적 창출이 가능한 지에 대한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경닷컴 정현영 기자 j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