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성장과 일자리, 分配 해법의 두 키워드
분배 문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얼마 전에 있었던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방한이 아니더라도, 세계적으로 분배가 주요 이슈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과거 한국은 개발도상국 중에서 특히 분배가 평등한 나라에 속했다. 그것은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창출했기 때문이다. 개도국의 소득 불평등은 실업이 가장 큰 원인인데, 한국은 노동집약적 제조업 제품의 수출에 근거한 성장으로 일자리를 만들었다. 거기에다 교육받은 고급 인력은 지속적으로 늘어난 반면 인구 증가율 하락과 이농 인력 감소로 비숙련 노동의 공급은 그만큼 늘지 않았기 때문에 둘 간의 임금격차는 좁혀졌다.

한국의 소득 분배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만성적 물가 불안 아래에서 부동산 투기에 따른 차익은 소수 자산가에게 집중돼 근로소득 평등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정부에 의한 교정도 미약했다. 당시 정부의 역할은 성장에 치중해서 교육을 제외하면 사회적 지출은 매우 적었다.

물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분배의 양상은 달라졌다. 우선 근로소득을 평등하게 하는 요인이 사라졌다. 대기업이 지배하는 자본집약적인 중화학공업 중심의 산업 및 수출 구조가 정착함에 따라 성장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기 어렵게 된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후에는 성장률 자체가 떨어졌다. 노동에 대한 수요가 늘지 않으니 고급 인력 공급이 더 빨리 느는 것이 무의미해졌다. 위기 후 비정규직 고용이 확대된 것도 분배를 악화시켰다. 그것보다 더 큰 것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 확대다. 위기 후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종사자 간의 격차는 커졌다. 이런 구도 하에서 대기업 비정규직이 중소기업 정규직보다 많이 받게 됐다.

위기 후 물가 안정에 따라 부동산 투기에 따른 불평등은 상대적으로 완화됐다. 그러나 노동과 자본 간의 분배가 노동에 불리하게 전개됐다. 위기 후 구조조정과 이윤 위주 경영으로 기업 이윤은 증대한 반면 노동의 몫은 줄었다. 반면 연금 등 사회보험이 확충되고 기초생활보장제가 도입되면서 정부의 재분배는 늘어났다.

분배 문제의 해결책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일자리를 수반하는 성장’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조업보다 노동집약적인 서비스업을 새 성장 동력으로 키우고, 대기업보다는 중소·벤처기업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 중견기업이 두터워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부동산 투기가 재발하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것들은 모두 잘 알려져 있는 ‘구조 개혁’ 과제다. 분배 문제 해결은 일차적으로 그런 과제를 얼마나 잘 해결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분배는 성장이나 일자리와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의 재분배 역할은 어떻게 되는가. 연금 등 사회보험의 경우 앞으로 고령화에 따라 재분배가 더 늘어날 것이다. 보완할 점도 많지만 지속 가능한 쪽으로의 개혁이 불가피하다. 반면 기초생활보장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한국이 선진국과 가장 큰 차이가 나는 곳이 이 영역이다. 기초생활보장제는 고령화와도 무관하다. 그리고 사회보장의 사각지대에 놓인 근로자들에게 손이 가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민간부문 임금근로자의 20%가 넘는 종업원 10인 미만 기업 근로자와 영세 자영업자가 그들이다.

최근 ‘피케티 바람’에서 보는 것처럼 전 세계적으로 분배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된 것이 기여한 점이 있다면, 불평등이 정보화와 세계화 등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 아니라 정책과 제도의 문제라고 인식하게 된 것이다. 한국도 당연히 예외가 아니다. 한국의 분배 문제는 무엇보다 일자리를 수반하는 성장을 회복하고 진짜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복지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그것은 재정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게 하더라도 불가피하게 재정 부담이 늘어난다면 세금을 더 거둬야 할 것이다. 불가피한 일은 미루지 않고 빨리 해결하는 것이 정도(正道)다.

이제민 < 연세대 경제학 교수 leejm@yonsei.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