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몽 펠르랭 소사이어티 홍콩 총회] "인도, 포퓰리즘의 덫 벗어나야 고성장 궤도에 진입한다"
2009~2010년 많은 사람은 인도 경제가 중국 경제와 시차를 두고 고성장 궤도에 오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중국이 경제개혁을 시작한 1980년과 인도가 경제개혁에 나선 1991년의 시차를 감안해 인도 경제의 기적을 목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2011년 이후 인도는 ‘힌두 성장률(Hindu rate of growth)’로 불리는 시절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힌두 성장률은 1960~1980년대 인도가 계획경제 아래 연평균 3.5%의 저성장을 유지하던 것을 말한다. 1950년대 인도와 같은 성장률 수준이던 한국과 대만이 폭발적인 성장을 한 성과와 비교해 지칭되기도 한다. 최근 인도는 기적은 고사하고 지속되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 조짐만 보여줄 뿐이었다. 왜 그럴까.

디팍 랄 미국 UCLA 명예교수가 이달 초 홍콩에서 열린 자유주의 경제학자 모임인 ‘몽 펠르랭 소사이어티(MPS)’ 총회에서 던진 질문이다. 그는 ‘인도 경제:성장에서 스태그플레이션까지’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그 원인과 인도 경제의 미래를 전망했다. 발표문을 요약 정리한다.
[다시 보는 몽 펠르랭 소사이어티 홍콩 총회] "인도, 포퓰리즘의 덫 벗어나야 고성장 궤도에 진입한다"
다른 많은 개발도상국처럼 인도는 1947년 독립 당시 내부 지향적인 통제경제정책을 추구했다. 19세기 영국 통치를 초래한 자유방임주의와 자유무역정책에 대한 반발이기도 했다. 자유방임주의와 자유무역이 인도의 지속적인 경기침체를 낳았다고 본 것이다. 최근 들어 그런 국수주의적이고 마르크스적인 정책이 옳았던 것인지 의심받지만 인도 지도층이 여전히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인도 지도층은 제국주의시대 서구의 공격에 무력했던 악몽에 시달려왔다. 중국 지도층처럼 전 세계로 확산되는 서구 자본주의가 약속하는 현대화와 고전적인 전통 사이에서 중도를 찾고자 노력했다. 전통을 지키면서도 현대화할 수 있다고 본 일본 지도층과 달리 인도에는 두 가지 대안이 있었다.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로 대표되는 첫 번째 대안은 전통을 고수하고 현대성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자와할랄 네루 총리로 대표되는 두 번째 대안은 페이비언 사회주의(혁명이 아닌 의회주의를 통해 점진적으로 자본주의 결함을 극복하자는 사회주의)를 채택해 현대화와 전통을 조화시키자는 것이었다.

간디가 암살당한 이후 네루는 인도의 경제정책을 결정했다. 그의 지도 이념은 계획경제였다. 정부가 광범위하게 개입하고 자유무역과 자본흐름, 가격을 대대적으로 통제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영국의 식민지배 때보다 더 높은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다. 농업 분야 투자와 저축률 상승에 따른 민족자본 형성, 인구 증가로 인한 노동력 증가에 힘입었다. 하지만 지하경제 확산과 농업기술 둔화가 발목을 잡았다. 1960년대 중반 이후 1980년대까지 인도의 연평균 성장률은 3.5%를 맴돌았다.
[다시 보는 몽 펠르랭 소사이어티 홍콩 총회] "인도, 포퓰리즘의 덫 벗어나야 고성장 궤도에 진입한다"
1984년부터 부분적인 경제 자유화

인도 경제가 3.5%의 성장 늪을 극복하기 시작한 것은 1984년 네루 외손자인 라지브 간디 총리가 집권(1984~1989년)하고부터다. 부분적인 경제 자유화로 인도는 1989년 7%의 성장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본격적인 경제 자유화는 만모한 싱 재무장관(2004~2014년 총리 역임)을 축으로 한 소수의석 정부(나라시마 라오 총리)가 1991년 정권을 잡으면서 시작됐다.

싱 장관은 네루 전 총리의 딸인 인디라 간디 총리(1966~1977년, 1980~1984년)가 주도했던 통제경제정책을 자유화정책으로 뒤집었다. 1991년 평균 87%에 달하던 수입관세율을 1996년 27%로 낮추고, 루피화를 약 20% 평가절하시켰다. 수출과 외국인 직접투자가 증가하고 외환보유액이 늘어났다. 1999년 43.2%이던 빈곤율은 2009년 29.9%로 뚝 떨어졌다. 부분적인 개혁만으로도 경제성장률이 5~6%대로 뛰어올랐다. 2003~2007년 평균 성장률은 약 9%에 달했다.

그러던 인도 경제가 2012~2013년 연평균 5%대 성장에서 제자리걸음했다. 인도 경제의 심각한 미시·거시적 불균형 외에 정치적인 포퓰리즘(대중인기 영합주의)이 문제였다. 포퓰리즘은 라지브 간디 전 총리의 아내 소냐 간디 국민회의당 대표와 싱 전 재무장관의 양두(兩頭) 정치가 낳았다. 이들은 각종 복지정책을 쏟아내고, 의회 의장의 국가자문위원회에 비정부기구(NGO) 행동가를 참여시켜 정부 내 경제 개혁가들을 좌절시켰다.

경제적 사고와 거리가 먼 대법원 판사들의 판결은 환경운동가와 다른 행동가들에 이용당했다. 2011~2012년 그런 행동가의 개입 때문에 인프라 투자 계획이 대거 중단됐다. 투자자금을 빌렸던 기업 부채비율이 높아지고, 이를 제대로 상환받지 못한 은행의 부실대출 비율도 높아졌다. 하락한 자본생산성은 저성장으로 이어졌다. 저성장과 함께 복지지출 재원인 세수 부족현상이 뒤따랐다. 재정위기 초기 증상이었다.

‘두 가지’ 포퓰리즘 구분 못했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복지정책의 확대는 ‘두 가지’ 포퓰리즘을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중 하나는 의회가 정부 지출을 확대해 재분배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소냐 간디와 싱 전 총리는 대다수 국민을 국가 지원이 필요한 자식들로 봤다. 다른 한 가지 (진정한) 포퓰리즘은 통제경제 정책이 초래한 각종 장애물 탓에 위축돼 있는, 충분히 능력 있고 자율적인 국민을 지원하는 것이다. 인도 정부는 기본 공공재인 법과 질서, 건강보험과 교육을 그런 사람들에게 제공하지 못했다. 최근 선거에서 총리에 당선된 나렌드라 모디는 두 번째 포퓰리즘으로 호소해 상대 후보를 완패시켰다.

모디 총리는 ‘실업수당보다는 개발’을 기치로 내걸었다. 그의 자유경제개혁이 성공할 수 있을까. 여전히 제기능을 하지 못하는 정치가 경제의 발을 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전력, 비료, 석유제품에 주는 불합리한 보조금과 무분별한 저소득층 고용 지원 등 인도 정부의 ‘정실 사회주의(crony socialism)’ 정책이 제거된다면 재정건전성이 회복되고, 물가상승률이 억제되고, 자본생산성도 높아질 것이다.

인도 전체 인구 가운데 생산 가능한 인구(15~64세) 비중은 2006년 62.9%에서 2026년 68.1%로 높아질 전망이다. 2010년 2.1명인 출산율로 볼 때 2045년까지는 전체 인구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성장률을 둔화시키는 급속한 고령화로 암울해진 중국 경제 전망에 비해 인도 경제의 역동성이 더 크다. 인도는 민간 기업가도 풍부하다. 중국 정부가 국영기업 일부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도록 지원하는 것과 인도 민간기업이 글로벌 시장에 자율적으로 진출하는 것은 성격이 다르다. 중국과 달리 인도는 100년 이상 시민사회를 키워왔다. 일본, 한국, 중국에 이어 인도도 기적을 이룰 수 있다.

정리=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