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바게트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14년 전인 1775년. 파리의 28세 구두수선공 집에 경찰이 들이닥쳤다. 경찰은 어리둥절한 표정의 그를 제쳐 놓고 집안을 샅샅이 뒤진 끝에 흰 바게트 빵을 찾아냈다. 그리고는 빵을 증거물로 압수하고 그를 연행했다. 그의 구속은 프랑스에서 흰 빵을 먹을 자격에 대한 논쟁을 불붙게 했다.

금기음식 연구서《악마의 정원에서》를 펴낸 스튜어트 앨런은 이 사례를 소개하면서 당시 노동자들은 딱딱한 검은 빵만 먹을 수 있었고 부드러운 흰 빵은 귀족과 시민 계층의 몫이었다고 말했다. 프랑스혁명 때 사람들이 “빵을 달라”고 외친 것도 단순히 먹을 것이 아니라 먹을 수 있는 빵을 달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이 질 좋은 빵을 먹을 수 있었던 게 불과 200여년 전이었다는 얘기다.

프랑스 빵의 대명사로 불리는 바게트(baguette·지팡이)가 지금처럼 길쭉한 모양이 된 것은 19세기부터다. 15세기까지만 해도 커다랗고 둥근 공 모양이었다. 제빵사를 ‘공(boule) 모양으로 반죽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불랑제(boulanger)로 부른 것도 이 때문이다. 빵집을 불랑제리(boulangerie)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초창기 바게트는 겉껍질이 너무 거칠고 속살도 퍽퍽했다. 소금은 비싸서 넣지 못했다. 흰 빵을 만드는 기술은 루이 14세 때에야 보급됐다. 지금처럼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바게트는 19세기 오스트리아 빈에서 개발됐는데, 그 무렵 탄생한 스팀 오븐 덕분이었다.

바게트와 쌍벽을 이루는 게 크루아상(croissant·초승달)이다. 하지만 이는 역사 깊은 헝가리 빵이다. 1683년께 헝가리에서 오스트리아로 전해진 뒤 마리 앙투아네트가 루이 16세에게 시집갈 때 따라왔다. 맛있는 바게트나 크루아상을 구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아침 6~7시쯤 사람들이 줄을 제일 길게 선 빵집을 찾아가면 된다.

빵의 어원은 크게 두 가지다. 영어(bread), 독일어(brot), 네덜란드어(brood)는 고대 튜튼어인 ‘braudz’(조각)에서 유래했고 프랑스어(pain), 스페인어(pan), 포르투갈어(po)는 라틴어 ‘panis’(빵·양식)에서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에 들어온 포르투갈어가 전해지면서 ‘빵’으로 굳어졌다. 1945년 군산의 이성당과 을지로의 상미당이 생긴 뒤로 본격적인 제빵 역사가 시작됐다. 상미당에서 출발한 SPC그룹의 파리바게뜨가 엊그제 빵의 종주국인 프랑스 심장부에 첫 점포를 냈다니 감개무량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