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rm Stay] 충남 외암마을, 굽이굽이 돌담길…古宅서 하룻밤 '시간 여행'
뒤로 야트막한 산이 있고, 앞으론 물길이 흐른다. 이 물길은 타임머신을 타고 500년 전 과거로 돌아가는 관문이다. 돌다리로 물길을 건너야 마을이 시작된다. 두 손을 동그랗게 모은 듯한 산세 안에 아늑히 웅크리고 있다. 조선시대 양반 마을의 고즈넉한 정취, 충청도의 절제된 소박함이 남아 있는 아산의 외암마을이다.

○500년 전 돌담길 여행

외암마을은 예안 이씨 집성촌이다. 원래 자연 부락으로 형성됐지만 조선 중기에 예안 이씨가 들어온 이후 자연스럽게 집성촌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도 예안 이씨 등 60여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산다. 그 덕에 충청지방 고유 격식을 갖춘 고택과 초가, 정원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다. 집들은 보통 100년에서 200년씩은 됐다. 주인 관직명이나 출신지명을 따 참판댁, 건재고택(영암군수댁), 송화댁, 신창댁 등 고택마다 택호가 있다.

마을 앞 돌다리를 넘어서면 다양한 표정의 장승들이 먼저 인사를 건넨다. 한 발 더 들어서면 돌담길이 시작된다. 얼기설기 쌓여진 올망졸망한 돌들 사이로 조롱박이 새침하게 매달려 있다. 큰 돌을 먼저 쌓고 그 사이로 작은 돌을 메워 넣은 허튼쌓기 식이다. 능소화와 여러 들꽃들이 돌담 사이에서 피고, 담쟁이나 호박넝쿨도 어우러져 자란다. 우리 옛담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아는 사람들은 제주 돌담길보다도 외암마을의 이 돌담길을 최고로 친다.

돌담길은 마을 곳곳을 흐르다 끊어지는가 싶은 순간 다시 이어진다. 총 길이만 5.3㎞다. 마을 입구엔 한가운데 널찍이 나 있고, 깊이 들어서면 여러 갈래로 갈라진다. 갈라진 길은 산자락과 이어진다. 돌담길을 천천히 거닐다 보면 마을을 감싸고 있는 설화산(雪火山)을 자연스럽게 오를 수 있다.

돌담 사이론 기와집, 솟을대문집, 초가집 등 고택이 늘어서 있다. 담장의 길이, 지붕의 소재, 정원의 크기는 집마다 다르다. 그래도 모두 200년 전 처음 지어진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일 터. 개천을 넘어온 집이 없고 산기슭까지 침범하는 집이 없다. 담장은 보통 높지도 낮지도 않다. 어떤 집이든 까치발을 하면 마당을 들여다볼 수 있다. 디딜방아 연자방아 물레방아도 있다. 오래된 것이 희귀한 요즘 소중한 풍경이다.

여러 고택 가운데 건재고택은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으로 유명한 곳이다. 영화 ‘취화선’에서 화가 장승업이 술병을 들고 올라간 곳이 바로 이 건재고택의 기와지붕이다. 건재고택 정원엔 학 모양을 한 연못이 있다. 설화산 계곡에서 흐르는 물을 끌어들인 것이다. 연못에서 흘러나온 계곡 물은 은행나무 앞을 지나 태연하게 다음 집으로 흐른다.

○사랑채에서 묵는 하룻밤

마을을 걷다 보면 직접 만든 조청이나 목을 축일 수 있는 식혜와 차를 파는 집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송화댁에선 연잎차를 판다. 보통 대문이 닫혀 있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고즈넉한 정원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송화댁의 연잎차는 맑고 달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민속주인 연엽주를 맛보고 싶으면 참판큰댁 이득선 씨를 찾으면 된다. 아산 지방에 전해오고 있는 연엽주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예안 이씨 가문의 종부에게만 그 비법이 전수돼왔다. 예안 이씨 문정공파 8대손인 이득선 씨의 부인 최황규 씨가 아직도 손이 많이 가는 옛 양조 방식으로 술을 빚고 있다. 연을 주재료로 만든 연엽주는 과거 임금님에게 진상했던 고급 술이다. 특히 술독 밑에 고인 맑은 청주는 그 감미로움과 향이 뛰어나 마신 사람은 누구나 탄성을 지를 만하다.

허기가 진다면 홍경래의 난을 진압한 이용현의 후손인 신창댁에 찾아가 충청도식 시골밥상을 부탁하는 것도 좋다. 사랑채가 따로 없는 이 집에선 대청마루 건너편 끝방에서 식사가 가능하다. 신창댁의 청국장은 콩 건더기가 풍성한 데다 짜지 않고 구수하다. 집에서 직접 담근 고추장아찌와 매실장아찌, 오이장아찌도 별미다. 신창댁은 손님이 있을 때만 밥상을 준비하기 때문에 식사를 원한다면 마을을 돌아보기 전에 미리 가서 주문을 한 후 정해진 시간에 다시 찾아가야 한다.

외암마을 여행은 산책 삼아 걷고 구경하는 것으로 끝낼 수도 있지만 마을의 깊은 곳까지 체험할 수도 있다. 몇몇 고택에서 문간채와 사랑채를 손님방으로 내어준다. 교수댁의 사랑채는 그리 크진 않지만 당시 충청도 양반가의 고풍스러움을 엿볼 수 있다. 교수댁은 조선시대 말 성균관 대사성을 지낸 이성열 선생이 살던 곳. 냉장고와 TV, 싱크대 등도 마련돼 있어 쓰기에 불편이 없다. 메주 쑤기와 조청 한과 만들기, 연 만들기 등 수십여 개의 체험프로그램이 주민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마련돼 있다.

서울에서 1시간30분~2시간 안팎이면 외암마을에 도착한다. 첫날엔 마을에 머물렀다가 이튿날에 인근 영인산 자연휴양림, 강당골 계곡을 거쳐 온양온천에서 피로를 푸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손꼽히는 공세리 성당도 근처에 있다. 1922년 완공된 이 고딕양식 성당은 해 질 녘 풍경이 특히 아름답다.

[Farm Stay] 충남 외암마을, 굽이굽이 돌담길…古宅서 하룻밤 '시간 여행'
■ 찾아가는 길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천안IC로 빠진다. 21번 국도를 타고 온양온천 쪽으로 20㎞가량 달린다. 신도리코 앞 사거리를 지나 읍내동 사거리에서 39번 국도 쪽으로 좌회전. 이 길을 따라 10㎞가량 달린 후 송악외곽도로를 지나다 보면 외암민속마을 간판이 보인다. 문의 (041)541-0848 야간에는 마을대표 이규정 씨(010-6627-9255)에게 하면 된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