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신사동 표갤러리에 전시된 노세환 씨의 작품 ‘똑같이 만들려고 최선을 다한 바나나’.
서울 강남구 신사동 표갤러리에 전시된 노세환 씨의 작품 ‘똑같이 만들려고 최선을 다한 바나나’.
“코카콜라와 펩시콜라, 짜파게티와 짜짜로니, 농심 비빔면과 팔도 비빔면 등 비슷한 식품인데 대중매체는 마치 큰 차이가 있는 양 광고하죠. 시판되는 생수 브랜드만 30개가 넘습니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구매할 때 주로 미디어에 의존하는 것 같아요.”

최근 스토리텔링 사진 작업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노세환 씨(37)의 말이다. 오는 24일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 표갤러리 사우스에서 개인전을 여는 그는 “비교 대상인 식품들을 최대한 똑같이 제작해 사물의 예민한 차이를 사진으로 포착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경희대를 나와 런던 스레이드 미술대학원에서 공부한 노씨는 사진계의 유망주다. ‘소나무 작가’ 배병우 씨에게 사진을 배운 그는 도시와 시골의 일상을 속도감 있게 찍어왔다. 최근에는 거리 풍경 사진에서 벗어나 사진의 새로운 경향인 ‘메이킹 포토(만드는 사진)’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학습된 예민함’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는 바나나, 사과, 피망, 브로콜리, 생수 같은 소품들을 흰색과 노란색, 붉은색, 녹색 페인트 통에 담갔다 건져 올린 후 촬영한 근작 10여점과 생수 설치작품 등을 내보인다. 낯선 감각의 전위적인 사진에 치우친 시대적 경향에 반발하듯 은유에 충실한 함축적이고 정제된 작품들이다. 노란 바나나가 녹아내리는 장면을 찍은 ‘똑같이 만들려고 최선을 다한 바나나’는 감각적이고 섹시하며 강렬하다.

“페인트가 녹아내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굳어가는 과정을 촬영한 겁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실상이 아닌 허상일 수도 있다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어요.”

그는 “사진은 원래 움직이는 사물의 정지된 장면을 포착하는 작업이지만 비슷한 것을 차별화하는 데에도 카메라 렌즈를 활용한다”며 “포장만 바꿔 대중을 호도하는 미디어의 허위의식을 사진 미학으로 보여주고 싶다”고 밝혔다.

주로 식품을 사진예술에 끌어들인 이유가 뭘까. 그는 “주입된 교육과 미디어의 평가에 의존해 형성된 음식에 대한 우리의 안목이 그 대상의 본질을 바로 보지 못하게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질문에서 작업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모이면 대부분 먹거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인터넷에서 맛집을 검색하면 블로그 조회 건수가 373만2256건이나 되더군요.”

미디어가 인간의 의식과 삶을 통제하고 있는데도 우리는 왜곡되거나 거짓된 정보를 무조건 믿고 있다는 게 작가의 주장이다. (02)511-5295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