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갈림길에 선 도요타
도요타가 요즘 이상하다. 국내나 해외 모두 실적이 좋지 않다. 국내와 해외를 포함한 총 생산은 두 달째 감소세다. 수출도 7개월째(5월 기준) 줄어들었다. 1분기 영업이익 역시 전년 동기 대비 13.2% 감소다. 혼다와 닛산 등 다른 일본 자동차들이 엔저에 힘입어 승승장구하는 모습과 대비된다. 인도와 중국 시장에선 현대·기아차가 우위다. 벌써 소니와 닮은 꼴이 되는 게 아닌지 우려하는 소리가 일본서 흘러나온다.

2008년부터 연속 2년간 적자를 경험했던 터다. 몰락론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사상 최대인 23조원의 영업이익을 내 건재를 과시했다. 엔저 약발 덕분이었다.

마른수건 짜는 도요타웨이 한계

지금 도요타는 다시 갈림길이다. 도요타가 낭떠러지로 달려가고 있다고 말하는 일본 언론도 있다. 2010년 대규모 리콜 사태 이후 각종 품질 결함에서 실력이 드러났다. 올 들어서도 두 차례 리콜이다. 자동차 특허 1위 기업이라고 뽐내지만 브레이크 등 전자 계통 부품에서 결함이 발견됐다. 도요타의 전장 기술 수준이 엿보인다. 디자인 실력도 문제다. 이코노미스트지가 도요타의 렉서스를 두고 역사나 서사가 없다고 한탄할 정도다.

JIT나 가이젠(改善)으로 대표되는 도요타 방식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얘기다. 마른 수건도 쥐어짜 재고를 없애고 효율을 높이며 원가를 절감하는 생산현장의 혁신이었다. 한때 국내 제조기업들에선 도요타 웨이가 현장 혁신의 전범(典範)이 되기도 했다. 정작 도요타 웨이가 지금 도요타에서는 먹히지 않는다. 가이젠을 위한 종업원 제안 건수는 2007년 대비 3분의 2를 넘는 수준이다. 도제방식은 일본 젊은 층에 기피 대상이다. 급작스런 성장과 규모 확대가 만든 부작용이다. 도요타는 전 세계 조립공장만 49개다. 이들 공장에서 도요타 웨이를 채용하는 건 무리가 있다는 지적은 당연하다.

최근 도요타는 미국의 모든 공장과 판매법인을 텍사스 댈러스로 옮긴다고 발표했다. 로스앤젤레스 거점의 판매법인과 뉴욕의 지주회사, 그리고 켄터키의 제조 연구개발 부문을 한군데로 모으는 형태다. 마이클 포터가 지역별 분산도를 높이는 쪽으로 글로벌 전략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도요타에 제언한 적이 있지만 도요타는 거꾸로 본사 기능 형태로 집적화시켰다. 벤츠는 석 달에 하나씩 새 모델을 내놓는다. 현대차나 기아차도 마찬가지다. 자동차 시장의 변화가 빨라지고 있다. 신속한 정보 공유와 빠른 의사결정이 생명이다.

집적화·디지털이 도요타 살릴까

도요타는 구글과의 제휴도 가속화해 전자제어시스템 개발에 나선다. 구글의 무인자동차 사업에도 협력하고 있다. 애플과도 자동차와 스마트폰을 연결시키는 카핸드폰의 공동개발에 나선다고 한다. 집적화나 디지털 모두 새로운 도요타 웨이다. 도요타는 소니나 파나소닉 등의 몰락 과정에서 많이 배웠을 것이다.

정작 자동차 업계의 기술은 균질화되고 모듈화되고 있다. 오히려 디자인과 마케팅력에서 성패가 갈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디지털도 승부처다. 도요타가 텍사스에서 찾으려는 것은 디지털과 디자인 싸움에서 이길 원동력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대차가 도요타보다 훨씬 낫다는 평가가 많다. 인도에서 도요타를 이긴 힘 역시 디자인과 마케팅력이다. 10년 후 경영혁신에서 도요타 웨이보다 현대 웨이가 더 인기를 끌지 모를 일이다.

오춘호 논설위원·공학博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