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아이들에게 TV만 보여주는 '돌봄교실'
“정부에서 하도 ‘돌봄 돌봄’ 하니까 얼추 흉내는 내죠. 하지만 프로그램은 물론 간식으로 우유 한 팩 주기도 어려워졌습니다.”(충남 한 초등학교의 A교사) 현장에서 살펴본 초등학교 무상돌봄교실의 실태는 심각했다. 교실당 수용 정원(20명)을 넘겨 운영하는 곳이 태반이었다. 강사를 초빙할 돈이 없어 아이들에게 내내 TV만 보여주는 곳도 있었다.

무상돌봄교실은 박근혜 정부의 핵심공약. 희망하는 초등학생에 한해 학교가 오후 10시까지 책임지고 돌봐주는 제도다. 지난해까지는 저소득층, 한부모 가정 자녀를 중심으로 운영되던 것이 올해부터는 1~2학년 신청자 전원이 무상돌봄 대상이 됐다. 내년엔 4학년, 2016년에는 6학년까지 확대된다. 현재 돌봄교실 이용 초등학생은 약 22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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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초등교사와 학부모 사이에선 “운영이 엉망진창”이라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전북의 한 초등학교는 무상돌봄 대상인 1~2학년 학생 121명 전원이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늘어난 인원에 비해 예산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 교재와 간식의 질이 전년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는 전언이다. “예전엔 빵과 우유를 간식으로 줬지만 이젠 비스킷 하나 주기도 어렵습니다. 교재도 컬러로 된 고급 교재를 나눠줬는데 이젠 매일 프린트해 낱장으로 주고 있어요.” (B교사)

정부가 올해 1008억원을 새로 편성해 시설비 597억원 등을 국고로 지원하고 있지만 인건비, 학급운영비, 저소득층 학생 식비 등에 쓰이는 운영비는 각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늘 돈이 모자라다보니 프로그램도 눈에 띄게 단순화됐다는 지적이다. 예전엔 독서 논술이나 그림 그리기 등 여러 교육을 제공했다면 이젠 말 그대로 ‘돌봄’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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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충남의 한 초등학교는 돌봄교실에 참여하는 아동이 전교에 딱 두 명이다. 하지만 학교는 돌봄교실 확대라는 정부 요구에 맞추기 위해 교실을 따로 만들어 온돌도 깔고 교실 안 화장실까지 갖췄다. 무려 4000만원을 들인 공사였다. “아이들이 모자라 교육청 등에 낼 자료를 만들 때는 급하게 교직원 자녀들을 동원했습니다. 저녁을 공짜로 주니 돌봄교실에서 끼니를 때우고 가는 교사도 적지 않아요.”

학교 운영비가 대부분 돌봄교실에 쏟아지면서 교내 예산 균형도 깨지고 있다. 예를 들어 현악부나 사물놀이패, 아람단 등에 지원되는 금액은 확 줄었다. 한 학교에서 현악부를 담당하고 있는 C교사는 “현악부 본인부담금이 월 1만원에서 3만원으로 올랐다”며 “이 때문에 현악부를 그만둔 학생도 있다”고 털어놨다.

강원도의 한 초등교사는 실제 돌봄이 필요한 아동이 오히려 소외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밤 9시에 돌봄교실이 끝나면 부모가 데리러 와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아동은 애초에 학교에서 신청을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 현장의 상황과 인프라를 고려하지 않고 실시되는 무상돌봄이 ‘보여주기용’에 그칠까 우려된다.

고은이 경제부 기자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