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감성 로봇
일본의 천재만화가 데즈카 오사무(手塚治)가 그린 만화 아톰이 TV시리즈로 일본에서 방영된 것은 1963년이었다. 일본에서 TV가 막 보급되던 시기였다. 오사무는 TV만화에서 아톰이 태어난 시기를 2003년으로 설정했다. 그는 로봇은 인간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규정한 로봇법이 공포된 이후 아톰이 탄생했다고 강조했다. 물론 이 로봇법은 만화 속의 일이다. 아톰은 135cm의 키에 체중 30kg이며 무엇보다 정의를 지키며 따뜻한 인간의 마음씨를 지녔다고 묘사했다.

지금 일본의 중장년층은 아톰을 보고 자라난 세대다. 물론 한국도 마찬가지다. 아톰이 일본 만화인 줄 몰랐던 사람도 많을 것이다. 어떻든 이들에게 아톰의 추억은 살아있다. 그래서 다른 나라들이 산업용 로봇이나 전투형 로봇에 힘을 쏟을 때 일본은 유달리 휴머노이드(인간과 닮은) 로봇 개발에 치중해온 것 같다.

세계에서 처음 등장한 휴머노이드 로봇은 1973년 와세다대가 만든 로봇 ‘와봇’이었다. 하지만 와봇은 그다지 주목을 끌지 못했다. 2000년 들어 소니가 애완견 ‘아이보’, 혼다자동차가 ‘아시모’를 소개하면서 본격적으로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붐이 일었다. 아톰이 탄생한 2003년이 다가온 것도 로봇 붐을 일으키는 데 일조했다. 한국에서 오준호 KAIST 박사팀이 휴보를 만든 것은 4년 뒤인 2004년이다. 하지만 일본의 기술진은 아톰처럼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고 인간과 대화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자신과 꼭 닮은 로봇을 개발한 교수도 있다.

엊그저께 일본 통신업체 소프트뱅크가 인간 감성을 느낄 수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 페퍼(Pepper)를 내년 2월부터 시중에 판매하겠다고 밝혔다. 키 1.2m에 바퀴를 달고 있으며 가슴에는 10.1인치 디스플레이가 설치돼 있다. 가격은 한 대에 200만원대. 페퍼는 사람의 표정이나 음성 분석을 통해 감정을 읽는 모션 센서가 많고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으며 클라우드 기능을 갖췄다고 한다. 하나의 페퍼로봇이 정보와 감정을 습득하면 네트워크를 통해 다른 페퍼도 이를 습득할 수 있다. 상점의 손님맞이용이나 유아를 위한 놀이상대용으로 쓰일 수 있다고 한다. 정작 이 로봇은 프랑스 벤처 업체가 개발한 것이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는 다신교 사회인 일본에선 로봇을 의인화하고 형제처럼 다룬다고 말한 적이 있다. 과연 페퍼가 그런 감성을 갖춘 일본인의 형제가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