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스위스에서 배우는 통상임금 해법
세월호 참사에 가려졌던 굵직한 사회경제적 이슈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작년 12월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기본적인 해법이 제시됐다고 생각했던 통상임금 문제도 다시 노사교섭에서 태풍의 눈이 되고 있다. 노동계는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통상임금의 확대와 과거분에 대한 소급지급을 최우선 교섭대상으로 요구하고 있고, 경영계는 임금비용의 확대가 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왜 이렇게 통상임금의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임금인상이나 소득증대는 생활수준의 향상을 원하는 모든 근로자의 소망이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에도 하루아침에 임금의 급격한 상승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임금은 로또가 아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우리는 매우 인상적인 기사를 접했다. 스위스에서 연방노조연합이 최저임금으로 제안한 월 4000스위스프랑(약 472만원) 또는 시급 22스위스프랑(약 2만5000원)의 도입 여부를 놓고 국민투표를 했는데 투표자의 76.3%가 반대표를 던져 부결됐다는 것이다. 스위스 국민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최저임금 인상안을 반대한 것은 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젊은 세대와 비숙련근로자의 일자리가 줄고, 전체 일자리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중소기업들이 임금부담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해 법리적으로 다양한 논쟁이 제기됐지만 대체로 노동계와 경영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합리적으로 이해관계를 조정하려는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평가됐다. 그 배경에는 우리 노사 간 임금협상의 실태와 관행이 있다. 기업의 영업성과와 생산성을 고려해 인상할 수 있는 임금총액이 정해진 상태에서 이를 배분하는 방식을 두고 노사가 협상해 왔다. 즉, 임금협상은 일종의 총량불변의 원칙이 적용되는 제로섬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임금인상의 여력을 가진 기업은 그 인상분을 기본급에 반영할지, 상여금으로 지급할지, 복리후생수당으로 지급할지 노동조합이나 근로자 측과 협상해서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노동계가 과거 소급분을 포함해 임금총액의 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노사의 협상결과를 부정하게 돼 대법원이 제시한 신의칙에 따른 해법에 배치된다.

정기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면 상당수 기업이 임금비용의 급격한 상승으로 인한 악순환의 고리에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은 근로시간 단축, 특근 자제 등의 방식으로 임금상승의 원인을 차단하고, 초과물량에 대해서는 아웃소싱의 방법을 강구할 것이다. 임금총액의 증가로 사업구조조정이 가속화되고 국내 공장의 축소나 공장의 해외 이전 등 최악의 상황이 초래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는 결국 근로자에게 부메랑이 될 것이다. 한편 정기상여금이 거의 없는 중소기업의 근로자는 통상임금의 확대가 그림의 떡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근로자 사이에 양극화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통상임금 갈등의 근본 원인은 대립적 노사관계 환경에서 형성된 우리 기업의 복잡하고 비합리적인 임금체계에 있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그러므로 기업의 영업성과와 생산성에 연계된 합리적 임금체계로 전환돼야 통상임금 문제의 근원적 해결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적 정기상여금의 불합리성을 해소하고 성과급의 지급기준을 새로 정하는 등 임금에 관한 룰을 재정비해야 한다. 노사는 점진적이고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합리적인 임금인상을 추구하도록 타협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하지 않는 스위스 국민들의 선택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박지순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jis-park@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