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외국인에 휘둘리는 야간선물시장
“특정기업이 마음대로 시세를 조종할 수 있는 시장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차라리 야간선물시장 문을 닫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격앙돼 있었다. 야간선물시장에서 코스피200지수 선물 상품에 투자했다가 돈을 날렸다는 그는 미국의 A사가 시세조종 혐의를 받고 있다는 한경 보도(본지 28일자 A11면 참조)를 보고 이같이 하소연했다. 특정기업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엉성한 시장을 도대체 왜 개설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거래소가 야간선물시장을 개설한 건 2009년. 밤새 미국 유럽 등지에서 날아든 악재를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다음날 장 시작 전에 흡수할 수 있는 수단을 주고, 시간대가 다른 외국인 투자자들이 그들의 낮시간에 투자할 기회를 준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야간선물시장 점유율(계약건수 기준)은 1%대에 그쳤고, 시장은 개인투자자와 외국인으로 양분됐다. 국내 ‘선수’(기관투자가)들이 빠진 채 ‘한국 개미’와 ‘해외 전문 트레이더’ 간 전쟁터로 변질된 것이다.

결과는 모두가 예상하는 그대로 전개됐다. 개미들이 ‘알고리즘 매매기법’(미리 설정된 변수와 조건에 따라 컴퓨터가 초당 수백건씩 주문을 내는 매매 방식)을 장착한 해외 전문 트레이딩업체를 상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주간선물시장의 6.5%(2011년 기준)에 불과한 야간선물시장의 ‘홀쭉한’ 거래량은 A사가 시세를 조종하게 된 빌미 역할을 한 것으로 금융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다음달 14일 증권선물위원회를 열고 100억원대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A사에 대한 검찰 고발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하지만 시장에선 A사에 대한 검찰 고발이 이뤄지더라도 야간선물시장의 근본적인 문제는 해소되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특정기업이 가격을 조종할 수 있는 ‘거래량 부족’ 문제를 풀지 않는 한 ‘제2, 제3의 A사’가 언제든 다시 나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금융당국과 거래소는 “시장이 커지면 해결될 문제”라고만 말한다. 얼마나 더 많은 투자자들이 눈물을 흘려야 근본 대책이 나올까.

오상헌 증권부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