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해외채권 입찰에 '성공'한 KT
KT는 지난 15일 미국 채권시장에서 추진해온 10억달러의 해외채권 발행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10억달러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국내 민간기업이 발행한 해외채권 중 최대 규모다. 채권 입찰에선 해외 163개 기관투자가가 발행액의 4배에 달하는 40억달러의 ‘사자’ 주문을 냈을 정도로 시장 반응이 뜨거웠다. KT 역시 자축 분위기다. “이번 채권 입찰 성공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KT에 대한 신뢰가 두텁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찬찬히 살펴보면 KT가 ‘투자자의 두터운 신뢰’를 말하는 것은 너무 앞서 나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채권의 발행금리만 봐도 그렇다. 미 국채 금리에 1.1%포인트를 얹은 수준(5년 만기 기준)이다. 지난 14일 해외 채권시장에서 거래된 경쟁사 SK텔레콤의 해외채권 금리(미 국채 금리+0.59%포인트)보다 높다. 그래서 일각에선 “KT의 해외채권에 돈이 몰려든 것은 투자자의 신뢰가 높아서가 아니라, 높은 발행금리로 투자 매력이 컸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상황도 녹록지 않다. 종전보다 더 높은 금리를 감수하더라도 채권 발행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창사 이래 첫 적자 기록, 고객정보 유출사건, 자회사의 법정관리 신청, 신용등급 강등 위기 등 연초부터 악재가 연달아 터진 탓이다. 지난달 5000억원의 회사채 발행을 추진하다 포기한 것도 이 때문이다.

KT는 이번 해외채권 발행을 통해 확보한 자금 말고도 당장 최대 1조원으로 예상되는 명예퇴직금과 연말까지 만기 도래하는 3100억원의 원화채권 상환에 필요한 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국내에서 채권 발행에 성공하려면 예전보다 얼마나 더 높은 금리를 얹어줘야 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한 증권사 채권담당 임원은 “지금처럼 신뢰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채권을 발행하려면 결국 적지 않은 디스카운트(금리 상승)를 감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어려움 가운데서도 해외투자금을 유치한 KT의 성과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투자자의 ‘두터운 신뢰’를 받아 해외채권 입찰에 성공했다고 자평하는 건 듣기 민망하다.

하헌형 증권부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