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당국이 국내 주가조작 세력에 집중했던 불공정거래의 조사 타깃을 속칭 ‘검은 머리 외국인’(외국인을 가장한 국내 투자자)을 비롯한 해외 투기세력으로 넓히기로 했다. 이를 위해 미국 홍콩 등 해외 금융당국과 공조 수사를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금융감독당국이 ‘주가조작 등 불공정거래 근절 종합대책’ 발표 1년(오는 18일)을 맞는 것을 계기로 해외 공조수사 강화를 ‘2기 증권 범죄와의 전쟁’의 주요 테마로 잡은 것이다.

국내 주가조작 세력에 칼 빼든지 1년…금융당국, 이번엔 해외 투기세력 겨눈다

○‘해외 투기세력 손본다’

13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최근 국제증권관리위원회기구(IOSCO) 산하 제4분과위원회(커미티4)에 회원 가입을 신청했다. 커미티4는 증시 불공정 거래에 대한 조사 방향과 국제 공조를 논의하는 실무기구다. 한국은 IOSCO에는 가입돼 있지만, 커미티4 회원 자격은 얻지 못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지난달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커미티4 위원장을 맡고 있는 존 그리피스 존스 영국 금융감독청(FCA) 의장을 만나 별도로 도움을 요청했다”며 “조만간 좋은 소식이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커미티4에 가입하면 국내 증시를 교란하는 해외 투기세력에 대한 조사를 제대로 해볼 수 있다며 의욕을 보이고 있다. 커미티4는 선진국 금융당국의 첨단 조사 기법과 최신 트렌드를 국내로 들여오는 창구 역할도 할 것으로 금융위는 기대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2010년 ‘도이치은행 옵션사태’(장 막판 동시호가 때 도이치은행이 2조5000억원 규모의 매물을 던져 450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행위)를 비롯해 외국인의 증시교란 행위가 벌어질 때마다 해외 금융당국과의 공조가 안된 탓에 조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커미티4에 가입하면 각국 금융당국 실무진과 수시로 교류하고 정보도 주고받게 된다”며 “검은 머리 외국인은 물론 해외 공매도 세력 등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가조작 대책 1년…‘절반의 성공’

금융위는 작년 4월 마련한 증시 불공정거래 근절 종합대책이 2기로 접어든 만큼 ‘자본시장조사단 내실 다지기’에도 힘을 쏟기로 했다. 지난 1년간 벌인 ‘증권 범죄와의 전쟁’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온 자본시장조사단의 역량을 끌어올려 불법 투기세력의 뿌리를 뽑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위가 전면에 나서 진행한 지난 1년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표면적으론 ‘괜찮은 성과’를 거뒀다. 금감원에 들어온 불공정거래 제보 건수는 2012년 774건에서 작년 1217건으로 늘었다. 불공정거래 조사건수는 같은 기간 243건에서 229건으로 줄어들었다. 긴급·중대 사건에 대해 한국거래소-금감원-금융위-검찰로 이어지는 협업체제(패스트트랙)가 구축되면서 과거 1년 이상 소요되던 금융당국의 증권범죄 조사기간이 3.5개월로 단축됐고, 검찰의 처리기간도 평균 124일에서 28일로 축소됐다.

하지만 일각에선 “오히려 역효과만 낳았다”고 평가절하한다. 불공정거래 건수가 줄어든 것은 시장 침체로 인해 투기세력이 잠시 시장을 떠난 결과일 뿐, 근본적으로 달라진 건 없다는 이유에서다. 금융위(자본시장조사단) 금감원(특별조사국) 검찰(증권범죄합동수사단) 거래소(특별심리부)가 비슷한 업무의 조직을 앞다퉈 신설하면서 비효율을 낳았고, “‘성과 내기’를 위한 무리한 조사가 벌어지고 있다”는 불만도 나온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