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나 조직이나 구성원에 대한 통제가 강한 곳은 대개 구성원들을 관리자가 믿지 못하는 곳이다. 한국의 규제가 다른 나라에 비해 심한 이유는 전통적으로 관의 민에 대한 불신이 크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국의 많은 정부규제들이 모든 사람을 일단 잠재적 범법자로 전제하고 만들어져 있다. 수많은 인허가제, 까다로운 등록기준, 복잡한 절차, 엄격한 자격제한과 같은 사전규제가 모두 이런 배경에서 나온다. 일단 믿어주고 나중에 위반하는 사람을 잡아 엄하게 처벌하는 방식이 아니다. 소수의 잠재적 위법 행위자를 잡기 위해 다수의 정직한 사람들까지도 도매금으로 엄한 감시와 규제의 대상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직하고 성실해 보았자 우대 받거나 보상을 받을 일이 없기 때문에 결국 모두 똑같이 피동적인 사람들이 될 수밖에 없고 창의와 자율은 발붙일 곳이 없다.

여기에 더해 한국의 규제는 비현실적인 규제가 많아, 지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환경, 안전, 건축, 식품위생 등에 관련된 규제에는 집행하는 사람이나 규제 받는 사람이나 어차피 규정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명목상 유지되는 규제가 상당수 있다. ‘준법투쟁’이 가능한 나라가 한국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어떤 식이든 법을 위반하지 않고는 살기 어렵게 돼 있다. 이런 상황 아래선 요령 좋고 배경 좋은 사람들만 법망을 빠져나가고 정직하고 법을 지키는 사람들은 본전은커녕 손해를 보게 된다. 어쩌다 걸린 사람은 잘못했다는 생각보다는 억울하다는 생각부터 들 테니 정직하고 성실해야 할 이유가 더욱 없게 된다.

다시 말해 한국의 많은 규제제도가 정직성, 자율능력, 준법정신을 파괴하는 구조로 돼 있고, 그 결과 관리들은 더욱 국민을 불신하고 더욱 강압적인 규제를 도입하게 되는 악순환을 반복하는 것이다. 한국의 규제 현실이 문제가 많고 획기적으로 개혁돼야 한다는 데에는 온 국민이 동의하면서도 정작 규제를 풀자는 논의에 들어가서는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의 해답 없는 논쟁에서 규제개혁이 맴돌고 있다.

그동안 규제개혁이 잘 안된 것은 규제 담당 공무원들이 규제 대상 국민의 정직성과 자율능력을 불신하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이 보는 금융회사들이나, 교육당국이 보는 학교재단들이나, 심지어는 중앙정부가 보는 지방자치단체도 모두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공무원들에게 스스로 규제를 풀라고 요구하는 것은 되지도 않을 일이지만, 규제담당 공무원들도 괴롭고 피곤하기는 마찬가지다. 규제를 풀었다가 잘못되면 그 책임과 뒷감당은 모두 자기들이 져야 한다면, 누구라도 규제개혁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밥그릇 때문만이 아니다.

결국 규제개혁은 별도의 개혁기구가 규제 공무원들을 통제해야 실효성이 있게 될 것이다. 이미 정부 내에 예산·인사 조직에 관해서는 주무부서가 마음대로 하지 못하도록 하는 통제기능이 존재한다. 예산이나 조직은 방임하면 무제한 늘어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규제도 마찬가지다. 그냥 놓아두면 자꾸 늘어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예산이나 조직처럼 전담 통제 기구가 필요한 것이다.

공무원들이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민간을 불신하기 때문에 규제를 풀어주는 것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이는 잘못이다. 자율능력이나 준법정신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규제를 풀고 국민을 믿어줘야 자율능력과 준법정신이 생길 것이다. KTX가 표 검사를 하지 않고, 공항 입국 시 세관신고서 내용을 믿고 짐 검사를 면제해줬다고 해서 무임승차나 밀수가 급증했다는 증거는 없다.

민간의 자율능력은 자율화를 통해 얻는 것이지, 결코 규제를 풀어주기 위한 전제가 아니다. 초보운전이기 때문에 사고가 두려워 운전을 하지 않으면 영영 초보운전일 수밖에 없듯이, 시행착오가 두려워 기업과 국민을 계속 규제로 묶어 놓는다면 우리는 영원히 타율적으로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종석 < 홍익대 경영대학장·경제학 kim0032@nat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