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야전사령관
주말 프로야구 개막전을 시작으로 부산갈매기가 다시 들썩이고 있다. 조용하다가 한순간 화끈하게 달아오르는 야구의 특성이 바닷가 사람들의 기질과 잘 맞아서일까. 부산 사람이라면 누구나 야구를 좋아하는 것 같다.

프로야구가 출범했을 당시 야구 인기는 정말 뜨거웠다.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야구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부산에 홈을 둔 롯데가 이겼다는 소식에 기뻐하고 졌다 하면 괜한 짜증이 나곤 했다.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최동원 선수가 혼자 4승을 이끌며 우승했던 장면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 있다.

한창 혈기 왕성하던 때라 부산은행 야구단에서 동료 선후배와 함께 야구경기도 자주 했었다. ‘사회인 야구’ 특성상 한순간의 수비 실책으로 승패가 뒤집어지는 허술한 플레이도 있었지만 열정만큼은 프로선수 못지않았다. 나는 포지션이 딱히 정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주로 포수를 맡았다.

포수는 사실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자리다. 무거운 보호 장비를 몸에 걸치고 쭈그려 앉았다 일어나기를 경기 내내 반복해야 한다. 파울플라이(타자가 친 공이 파울그라운드에 높게 떠오르는 것)를 향해 뛰고 바운드볼을 블로킹하려고 몸을 던지는 일은 기본이다. 파울팁(타자가 친 공이 포수 쪽으로 가는 것)에 맞는 고통도 견뎌내야 한다.

몸만 고된 것이 아니다. 포수는 강한 정신력과 상황 판단능력도 필요한 자리다. 상대 타자를 일일이 분석하고 구종을 선택해 투수를 리드해야 한다. 경기 흐름에 따라 야수의 수비 위치를 조정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다. 포수가 그라운드의 ‘야전사령관’으로 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최고경영자(CEO)의 역할이 포수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포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제프 토보그는 ‘포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포수는 필드 위에서 유일하게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포지션이다. 그렇다면 분명히 뭔가 특별하다는 뜻”이라고 답했다.

자리를 바꿔 앉으면 새로운 풍경을 볼 수 있는 법이다. CEO는 직원이 보지 못하는 곳을 바라보며 조직 전체를 이끌어야 한다. 직원보다 더 많은 땀을 흘리며 몸으로 직접 부딪쳐야 한다. 경쟁사의 움직임과 시장의 변화를 살펴가며 재빠르게 사인을 내고 작전을 지시해야 한다. 그래야 이길 수 있고 그래야 야구도, 비즈니스도 맘껏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성세환 < BS금융그룹 회장·부산은행장 sung11@busanbank.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