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5억원 이상 등기임원의 보수 공개 기한(31일)을 앞두고 주요 기업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회사를 책임지는 주요 임원의 급여를 공개해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자는 취지와 달리 자칫 대상자들의 사생활이 침해되고 위화감만 조성하는 등 그동안 제기됐던 우려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미 등기임원의 연봉을 밝힌 일부 기업은 이미지 타격을 우려하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反기업 정서 확산될라"…재계, 등기임원 보수공개에 초긴장
지난해 11월 개정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따라 사업보고서 제출 대상 기업은 31일까지 연봉 5억원 이상 등기임원의 보수를 공개해야 한다. 작년까지는 등기임원에게 지급된 총 보수와 1인당 평균 지급액만 기재하면 됐지만 올해부터는 5억원 이상 등기임원은 개인별로 급여, 상여금, 기타소득, 퇴직소득 등 보수를 상세히 공개해야 한다. 대부분의 기업은 마감일인 31일 사업보고서를 내놓을 예정이다.

삼성그룹은 연봉 공개의 파장이 가장 크게 미칠 것으로 보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계열사 중에선 단연 삼성전자가 관심이다. 지난 14일 주주총회에서 삼성전자는 권오현 부회장, 윤부근 소비자가전(CE)부문 사장, 신종균 IT&모바일(IM)부문 사장, 이상훈 경영지원실 사장 등 등기임원 4명의 지난해 보수총액이 336억원이라고 밝혔다. 1인당 평균 84억원이다. 스마트폰 사업을 책임지는 신 사장의 연봉은 100억원이 넘을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 측은 31일 공개되는 연봉액에 대해 여론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고액 연봉이 공개돼 자칫 ‘반(反)삼성’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애플, 소니, 노키아 등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며 매출과 이익의 90% 이상을 해외에서 올리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애플의 경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신고된 경영진 5명의 평균 연봉은 6240만달러(약 667억원)로 삼성전자의 8배에 달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애플 구글 등에서 인재를 뽑아오려면 원래 받던 수준 이상을 줘야 하는데 아직 삼성전자 임금은 글로벌 경쟁사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다만 삼성전자 등의 영향으로 국내 영업 위주인 삼성의 금융계열사 등도 전반적으로 연봉이 높은 것은 부담이다. 삼성 측은 ‘1등 DNA’ 전수를 위해 전자 출신 인사들이 계열사로 옮기다 보니 연봉을 맞춰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삼성전자 인사팀장을 맡다 삼성카드로 옮긴 원기찬 사장은 연소득이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측은 오너 일가에 대해선 크게 걱정하지 않고 있다. 공개 대상인 등기이사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밖에 없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경우 2009년 경영 복귀 이후 연봉을 전혀 받고 있지 않다.

총수가 사법처리를 받았거나 수사가 진행 중인 그룹도 속을 태우고 있다. 최태원 SK 회장과 최재원 수석부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이재현 CJ 회장 등은 이달 주요 계열사 주총에서 등기이사직을 내놨지만 지난해 연봉은 공개해야 한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해 1월31일, 최재원 부회장은 9월27일, 이재현 회장은 7월1일 각각 구속됐다. 김승연 회장은 2012년 8월16일 구속됐다가 지난달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SK 관계자는 “최 회장이 지난해 11개월 동안 구치소에 있었지만 형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등기임원으로서 의사결정에 참여한 만큼 합당한 수준의 보수를 받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30일까지 사업보고서를 공개한 곳 가운데선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지난해 42억4100만원을 받아 오너 가운데 가장 금액이 많았다.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은 만도에서 23억8800만원, 허창수 GS 회장과 동생인 허명수 GS건설 부회장은 GS건설에서 각각 17억2700만원과 6억3500만원을 받았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경제학부)는 “등기임원의 급여를 공개한다고 해서 기업 경영의 투명성이 높아질지는 의문”이라며 “기업인의 사생활 침해 우려와 반기업 정서 확산 등 부작용이 더 많다”고 지적했다.

박해영/김현석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