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과 날줄] 양보할 수 없는 삶의 덕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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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만 좇고 소유에 집착하는 인생
점점 더 멀어지는 이웃과의 거리
밤하늘 총총한 별도 보며 살기를"
장석주 < 시인 kafkajs@hanmail.net >
점점 더 멀어지는 이웃과의 거리
밤하늘 총총한 별도 보며 살기를"
장석주 < 시인 kafkajs@hanmail.net >
![[씨줄과 날줄] 양보할 수 없는 삶의 덕목들](https://img.hankyung.com/photo/201403/AA.8520705.1.jpg)
일부 대학교에서 벌어졌던 인문학과 통폐합 소동이 한심했던 것은 돈 되는 것의 가치가 그 이외의 다른 삶의 가치보다 더 중요하다는 천박한 발상 때문이다. 인문학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어떻게 인간답게 살 것인가를 따지고 가르친다. 한데 대학이 취업률이 낮다는 이유로 인문학과의 통폐합에 신바람을 냈다. 그것은 혁신이 아니라 대학 스스로 제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몰지각의 극치다. 살아보니, 사람은 실용성만을 추구하며 사는 존재가 아니다. 그렇게 살면 안 된다. 당장 돈이 되는 것들은 아니지만 교양, 깊은 사색, 독서, 상상력, 창의력, 타자에 대한 이해, 진리에 대한 갈망 따위는 풍요롭게 사는 데 필요한 덕목이고 가치들이다. 이런 덕목과 가치를 길러주는 게 인문학이다. 그것을 깡그리 부정하고 외면하는 사회는 황폐화되고, 결국은 공멸로 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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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의 양적인 증대를 위해 달려가는 사람에게 삶을 향유할 시간은 늘 부족하다. 그 부질없는 것을 좇느라 시간이 흩어져버리는 까닭이다. 그 질주, 그 맹목의 추구를 멈추고 바라보자. 2000년 전 말 구유에서 태어난 한 성인은 평생을 홈리스로 살았다. 영국의 시인이자 평론가인 G K 채스터턴은 집없이 살았던 그분을 기리며 이런 시를 썼다.
‘짐승들이 여물 먹고 침 흘리는 곳/그 누추한 구유에서 태어난 아기/그가 집을 갖지 않는 곳에서만/그대와 나는 집을 얻네/우리의 손은 만들고 머리는 안다/그러나 우리는 잃어버렸네, 오래 전에, 우리의 가슴을.’ 이 시는 우리가 가진 집, 돈, 명예, 지위, 권력 따위는 우리가 잘났기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 그것을 우리에게 양보한 덕분이라는 것을 말한다. 집을 차지한 대신에 무엇을 잃어버렸는가를 돌아보자. 우리의 집은 커졌지만 인격은 더 작아지지 않았는가? 더 많은 물건을 사들이고 쓰지만 마음은 더 가난해지지 않았는가? 인류는 달에 갔다 왔지만 이웃과의 거리는 더 멀어지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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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 시인 kafkajs@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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