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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수첩] 탁상행정 PEF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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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동욱 증권부 기자 leftking@hankyung.com
    [취재수첩] 탁상행정 PEF정책
    “기업은행 사모펀드부는 50억원을 초과하는 투자를 꺼려요.”

    최근 기업은행과 공동으로 사모펀드(PEF)를 운용하는 운용사 직원에게 전해 들은 말이다. 기업은행 사모펀드부는 대출을 총괄하는 여신운용본부 소속이다. 규정상 50억원까지는 사모펀드부에 재량을 허용하지만 50억원을 넘어서면 까다로운 심사 절차를 밟아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안전을 우선하는 대출과 리스크(위험)를 부담해야 하는 PEF가 동일시된다는 것은 비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최근 ‘창조 금융을 활성화하기 위해 PEF를 키우겠다’며 규제완화를 선언했다. 하지만 PEF업계는 법과 제도를 고치기에 앞서 관행과 내부규정을 우선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국내 2위 PEF 운용사인 산업은행의 사모펀드본부 임직원 수는 33명이다. 본부 내 평균 근속 연수는 3년 미만이다. 다른 금융지주 계열 PEF 운용사들도 임직원을 자주 바꾼다. 은행을 따라 사모펀드에 투자하는 연기금의 한 관계자는 “핵심 운용역을 자주 바꾸는 PEF는 신뢰하기 어렵다”며 “투자에 실패하면 전임자 책임으로 떠넘기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전문성이 떨어지면서 리스크를 회피하려는 경향도 짙어지고 있다. 기업은행의 공동 PEF 운용사들은 “은행의 보수적인 심사 때문에 울화통이 터진다”고 하소연했다. 2010년 이후 기업은행이 신규 설립한 PEF(6개)의 총 약정액 9000억원 중 실제 투자한 집행액은 절반에도 못 미친다. 기업은행은 법상 규제 때문에 대형투자를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다고 항변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국책은행 주도로 PEF를 키운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금융위원회는 인수합병(M&A) 활성화 대책에서 “정책금융기관, 채권은행, 연기금 등이 출자하는 PEF를 1조원 이상 규모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있는 돈도 제대로 못쓰는데 정부가 자금 유치를 도와준다고 하니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이다. PEF를 키우는 것은 돈을 넣는 것도 필요하지만, 금융회사들의 내부 규정을 바꾸는 게 더 중요하다. 법과 제도를 고치기 위해 국회나 정부 유관부처에 갈 필요도 없다.

    좌동욱 증권부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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