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언더커버 보스'
중국 당나라 사람들은 어사대를 치상(痴床)이라 불렀다. ‘바보 침상’이라는 뜻인데 어사 자리에 오르면 교만해져 총명한 사람도 바보가 된다고 조롱한 말이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편안함을 추구하며 백성들의 현실과는 괴리된 탁상공론만 일삼는 행태를 비판한 것이다.

오늘날 많은 최고경영자(CEO)들은 치상을 멀리하고자 노력한다. 치열한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 직접 현장으로 뛰어들어 각종 현안을 챙기는 경우가 많아졌다. 직원들의 의견을 듣고 경영의 방향성을 점검하며 영업 일선의 생생한 아이디어를 경영전략에 반영하는 것, 이른바 현장경영이다.

나는 유독 ‘11’이라는 숫자와 인연이 깊다. 1979년 1월11일에 공채 11기로 부산은행에 입사했고 11대 부산은행장 자리에 올랐다. 결혼기념일도 10월11일이다. 우연이 반복되면 운명이라 했는데 숫자 ‘11’이 주는 의미가 남다르다. 머리로 살지 말고 두 다리로 살라는 뜻이었을까. 평소 현장경영을 신조로 삼고 영업현장을 누비며 살아온 지 어느새 30년이다.

틈나는 대로 직원들의 애로와 고충을 듣고 거래처를 찾아가 여러 가지 의견을 나누며 주요 현안을 처리한다. 부산 이외 지역을 방문할 때면 당일 하루에 그치지 않고 1박2일 동안 함께 허심탄회한 대화의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하지만 가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계획된 만남이었기 때문일까.

언젠가 미국 방송사 CBS에서 제작한 ‘언더커버 보스’라는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CEO가 자기 회사의 말단 직원으로 위장 취업해 겪는 에피소드를 보여주는 것이었는데 CEO가 현장의 문제점을 직접 느끼고 확인하는 과정이 매우 흥미로웠다. 방송 내내 일선 현장에서 벌어진 일은 CEO가 알고 있던 사실과 너무나 달랐다. 자신이 도입한 경영정책 때문에 직원들이 힘들어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결과는 해피엔딩이다. CEO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답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현장에는 분명 답이 있다. 그러나 누구나 언더커버 보스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작정 현장에 나가는 것이 만능이라고 할 수도 없다. 하지만 현장을 꿰뚫어 보지 못하면 결코 숨어 있는 진실을 파악할 수 없다. 핵심은 ‘얼마나’가 아닌 ‘어떻게’ 만나느냐에 있다. 치상에서 벗어나는 진정한 현장경영의 길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성세환 < BS금융그룹 회장·부산은행장 sung11@busanbank.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