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취재단·김정은 기자 = "행님아!"
3년4개월 만의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린 20일 오후 금강산호텔.
오랜 세월 생사조차 몰라 애태웠던 형 박양수(58) 씨의 얼굴을 42년 만에 다시 마주한 양곤(52) 씨는 기쁨과 설움이 뒤섞인 목소리로 그동안 혼자서만 되뇌던 형을 목소리 높여 불렀다.

박양수 씨는 1972년 12월 28일 서해 상에서 홍어잡이를 하다 납북된 것으로 알려진 쌍끌이 어선 오대양 61호의 선원이다.

당시 그는 어려운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될까 싶어 배를 탔다가 집으로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박 씨의 부모는 빼앗긴 아들과 다시 만날 날만을 애타게 기다리다 지병과 노환으로 모두 세상을 떴다.

양곤 씨는 그동안 형이 죽은 줄로만 알다가 10여 년 전 북한에서 온 사람에게서 형이 살아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형제는 상봉장에서 서로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와락 끌어안고 오열했다.

한참을 말없이 눈물만 흘리던 두 사람은 얼굴을 만져보고 뺨을 비비다 손을 부여잡고 또한번 한참을 울었다.

양곤 씨는 형을 바라보고 흐느끼다 "행님아!" 하고 부르며 다시 형의 어깨의 얼굴을 묻고 참았던 울음을 토해냈다.

겨우 감정을 다독인 양수 씨는 함께 나온 아내 리순녀(53)씨를, 양곤 씨는 아들 종원(17)군을 서로에게 소개했다.

양곤 씨는 "무엇보다 형님이 건강하시니 감사하다"라며 안도감을 전했다.

양수 씨는 흰 봉투에 담아온 '선물명세'와 훈장증, 훈장을 꺼내보이며 "나도 당의 배려를 받고 이렇게 잘 산다"라고 동생을 안심시켰다.

그는 "빨리 통일이 돼야지…자주 만나자"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돌려 말하기도 했다.

양곤 씨도 가족사진 여러 장을 형에게 보여주고, 추운 북녘에서 따뜻하게 지내라고 옷과 생활필수품 등 선물을 전달했다.

이날 상봉에서는 박 씨 형제를 포함해 납북 선원 2명과 전시 납북자 2명의 가족이 만났다.

최선득(71) 씨는 40년 전 납북된 수원 33호에 타고 있던 동생 영철(61)씨와 제수 박순화(60) 씨를 만났다.

형제는 한참을 부둥켜 안고 울다가 서로 어떻게 살았는지 묻고 대답하며 회포를 나눴다.

수원 33호는 1974년 2월 15일 수원 32호와 함께 백령도 인근에서 홍어잡이를 하던 중 북한의 함포 사격을 받고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스물한 살이던 영철 씨는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 외양 어선을 탔다.

선득 씨는 동생을 향해 "40년 전 얼굴 그대로"라며 "죽기 전에 못 보는줄 알았다"라고 그리움의 마음을 전했다.

영철 씨도 "건강한 것을 보니 반갑다"라며 "정녕 못 만나는 줄 알았다"라고 말했다.

영철씨는 "원수님 덕에 만났다", "서로가 비방중상하지 말고 민족단합해서 통일해야 한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영철 씨는 4남3녀, 7남매 중 넷째다.

맏이인 선득씨를 비롯한 다른 6남매는 모두 살아있고, 부모는 숨졌다.

선득 씨는 둘째인 영득 씨의 아들 용성(43)씨가 작은 아버지인 영철씨에게 쓴 편지와 가족사진, 생필품과 의약품 등 선물을 전했다.

편지에는 영철씨의 부모가 언제 어떻게 임종을 맞았는지, 여섯 남매가 어떻게 살고 있고 새로 생긴 가족들은 누가 있는지, 가족들이 명절을 어떻게 보내는지 등 남녘 식구들의 소소한 일상과 영철씨를 향한 형제들의 그리움과 애틋함이 담겼다.

최병관(68) 씨는 6·25 때 의용군으로 끌려갔다고 알고 있는 아버지가 북한에서 낳은 이복동생 병덕(47)·경희(53·여)씨를 만났다.

아버지 흥식 씨는 이미 숨졌다.

세 사람은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사이지만 서로를 "오빠", "형님", "동생"이라고 부르며 부둥켜안고 기쁨에 겨워 흐느꼈다.

병관 씨는 아버지가 북한에서 새로 꾸린 가족의 사진을 보고는 "그래도 이렇게 사셨으니 외로움이 덜했을 것"이라며 말했다.

그는 "아버지는 지금까지 행방불명 처리됐었고 이미 돌아가셨다고 생각했다"라며 "그런데 (북한에서) 살아계셨다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최남순(65·여) 씨는 60여 전 죽은 줄로만 알고 있던 아버지가 북한에 남기고 간 이복동생 경찬(53)·경철(46)·덕순(56·여) 씨를 만났다.

아버지 종석 씨는 92세를 일기로 이미 세상을 떴다.

최 씨는 아버지가 6·25 때 의용군으로 끌려갔다가 숨진 줄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 생일을 기일 삼아 제사까지 지냈다.

그러나 최 씨는 상봉장에서 북측 가족에게서 건네받은 아버지 사진을 보고,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나눈 뒤 "아무리 봐도 제 아버지가 아닌 것 같다"라며 허탈해했다.

현재 최 씨는 북측 가족의 아버지가 자신의 아버지와 동일 인물이 아니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금강산=연합뉴스) kj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