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감래 해외 M&A…'승자의 저주'라던 밥캣, 두산의 든든한 '효자'로
지난 4일 두산그룹 기업설명회(IR) 행사장에 참석한 기관투자가들은 두산그룹의 지난해 실적을 보고 깜짝 놀랐다. 400%에 육박하던 연결 기준 부채비율이 250% 아래로 뚝 떨어진 데다, 수익성도 눈에 띄게 개선됐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10여년 동안 중장비·기계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개편한 두산의 노력이 결실을 맺고 있는 게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밥캣 영업이익률 1년 새 두 배로

고진감래 해외 M&A…'승자의 저주'라던 밥캣, 두산의 든든한 '효자'로
눈길을 끈 것은 한때 두산그룹의 재무구조 악화 원인으로 꼽히며 ‘미운 오리새끼’ 취급을 받던 미국계 소형 건설장비회사 밥캣(DII)의 실적향상이었다. 밥캣은 두산인프라코어의 자회사다.

지난해 밥캣의 매출은 2012년에 비해 약간 감소(-2.5%)했지만, 영업이익은 26% 증가했다. 2012년 6.1%였던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7.9%로 높아졌다. 지난해 두산인프라코어의 총 매출 7조7368억원 중 밥캣 매출비중은 46.3%(3조5825억원)였다. 총 영업이익(3695억원) 중 밥캣의 비중은 76.7%(2836억원)에 달했다.

분기별로 살펴보면 밥캣의 성장세가 더 두드러진다. 작년 4분기 이 회사의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6.4% 늘어난 8799억원이었다. 4분기 영업이익률은 11%로 전년 동기(5.1%)의 두 배가 됐다. 2012년 4분기 말 이 회사의 수주 잔량은 7660대였는데 작년 4분기 말엔 1만3081대로 증가했다.

미국 건설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북미 시장에서 밥캣의 대표 제품인 스키드스티어로더(SSL)와 콤팩트트랙로더(CTL)가 날개돋친 듯 팔려나갔다. 작년 4분기 해당 품목별 북미 시장점유율은 44.9%와 32.1%로 1년 전보다 3.5%포인트, 3.8%포인트씩 높아졌다.

두산인프라코어 관계자는 “밥캣의 주력 시장인 미국의 주택경기가 꾸준히 회복되고 있고, 미국·유럽 등 선진국 경기가 좋아지면 밥캣의 실적 호조세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자체 개발한 소형 디젤엔진(G2)을 장착한 밥캣 제품 판매가 본격화되면 수익성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해외 M&A 성공사례

밥캣은 한때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다. 두산은 2007년 밥캣을 미국 잉거솔랜드에서 49억달러에 인수했다. 차입매수(LBO) 방식의 인수합병으로, 39억달러를 외부에서 조달했다. 하지만 곧이어 닥친 미국발 금융위기 탓에 자금 조달에 차질을 빚은데다 투자 자산인 밥캣의 기업가치가 떨어져 이중고를 겪었다. 가까스로 국내 금융사의 신디케이트론으로 자금을 막을 정도였다. 밥캣의 영업현황도 최악으로 빠져들었다. 노스다코타주 비즈마크 공장이 문을 닫는 결정을 내려야 했고 2008,2009년 두 해 동안 적자 규모만 2조5000억원에 달했다. 모회사인 두산인프라코어가 1조원 규모의 자본을 추가로 투입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2010년 3분기부터 밥캣은 흑자를 내면서 14분기 연속 흑자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두산건설로 인해 그룹 재무위험이 부각됐을 때도 밥캣은 ‘캐시카우’ 역할을 했다. 밥캣 인수를 주도했던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사진)이 최근 미국을 자주 찾는 것도 밥캣의 해외 사업 등을 챙기기 위해서다. 박 회장은 사석에서도 “밥캣이 아주 효자가 됐다”며 “14분기 연속 흑자행진을 이어가고 있는데 생산이 못 따라갈 지경”이라고 자랑할 때가 잦다.

금융권 관계자는 “밥캣은 인수합병(M&A)의 효과를 단기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섣부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라며 “다른 계열사와의 시너지 효과 등까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성과를 낼 때까지 오랜 기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