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와 의사협회(이하 의협)가 원격의료 시행을 위해 의료법 개정에 합의했지만 국회에서 법이 통과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합의안이 발표되자마자 의협은 내분에 휩싸였고 파업 찬반투표도 예정대로 실시하기로 했다. 국회로 넘어가더라도 야당이 의료법 개정안 통과에 합의해줄지도 미지수다.

국회로 넘어가는 '원격의료' 가시밭길
이날 합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원격의료 입법을 추진키로 한 것이다. 의협은 그동안 시범사업을 먼저 하자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6차례 협의를 통해 이 부분을 양보했다. 입법과정에서 시범사업 방식 등을 함께 논의키로 한 것이다. 합의문에는 “대면진료를 대체하지 않는 의사-환자 간 원격모니터링 및 원격상담에 대해서는 필요성을 인정했다”고 표현했다. 의사-환자 간 원격상담, 환자가 의사에게 혈압 등을 잰 자료를 제공하는 것 등이 필요하다는 것에 양측이 합의한 셈이다.

하지만 환자가 의사를 직접 만나지 않고 원격진료를 받고, 처방전을 발행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양측이 국회 입법과정에서 추가로 논의하기로 했다.

또 병원의 영리자회사 설립 허용 등 투자 활성화 대책에서도 자본유출 편법 방지, 사무장병원 방지 등 부작용을 막는 방안을 공동으로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외형적으로는 의협도 원격의료 및 영리자회사 설립에 동의한 셈이다.

의협이 양보만 한 것은 아니다. 양측은 “향후 의료제도 개선에 있어 의학적 전문성을 존중하고, 전문성이 최대한 반영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용진 의료발전협의회 간사(의협 기획부회장)는 “앞으로 의료제도를 의협과 협의없이 바꿀 수 없다는 의미”라며 “이번 합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진료비(수가)가 낮게 책정됐다는 것을 정부가 인정하고 이를 협의하겠다고 나선 것도 의협이 얻은 성과라는 평가다.

하지만 상황을 낙관하기는 어렵다. 양측이 합의문을 발표하기 시작한 오전 10시께 노환규 의협 회장은 블로그에 글을 올려 “합의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자신이 파견한 대표단이 정부와 합의한 내용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어 오후 2시 기자회견에서 “협상단 협의가 이뤄진 적이 없다. 이번 합의안은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협상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당초 약속대로 회원들에게 찬반을 물으면 될 일인데 왜 노 회장이 저렇게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협상단을 사실상 허수아비로 취급한 것에 대한 불쾌감을 나타낸 것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도 “의협 회장이 뒤늦게 합의안 수용 불가를 주장하는 것은 난센스”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이런 내분이 정리되지 않고 투표에서 파업이 가결될 경우 이번 합의는 사실상 없던 일이 될 수도 있다. 의협은 19일부터 27일까지 오는 3월3일로 예정된 총파업에 대한 회원 투표를 하기로 했다.

이준혁/박상익/김용준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