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갈색틀' 혁파해야 녹색성장 열린다
최근 정부는 2020년까지 평시 예상 배출량의 30%만큼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하는 로드맵을 확정했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또한 내년부터 시행된다. 실제 시행에 들어가면 국가 경제는 환골탈태의 구조 변화를 시작할 것이다. 벌써부터 산업계 일각에서는 배출권 거래제 시행의 시기상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어차피 조만간 겪어야 할 일이고, 먼저 겪는 것이 오히려 더 유리하다.

해가 갈수록 기후변화의 전개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전례 없는 규모의 필리핀 태풍 참사나 마치 영화 ‘투모로우’처럼 북미 대륙을 강타한 한파만이 아니다. 우리 동해안 지역에 들이닥친 작금의 폭설도 지극히 이례적이다. 이처럼 기상이변의 피해를 겪는 나라가 급속히 늘어나면 온실가스 감축은 결국 모든 나라의 의무로 될 것이다.

지구 온난화는 해수면 상승뿐만 아니라 대기 중 습도를 크게 올려 전례 없는 대형 가뭄과 홍수를 빈번히 유발하는데 그 파괴력은 세계대전급이다. 전문가들은 온실가스 배출을 이대로 두면 앞으로 온난화 재난이 매년 세계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5% 이상을 훼손할 것으로 본다. 이 규모는 세계 경제성장률을 훌쩍 넘으므로, 기상이변으로 잃는 손실이 경제성장 성과를 능가한다. 지금이라도 매년 세계 GDP의 1%를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 투입해야 이 재앙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경제성장은 온실가스에 대한 염려 없이 에너지를 마구 써대면서 이룩한 갈색성장이다. 기후변화의 재앙이 현실 문제로 된 이제 앞으로의 성장은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하는 녹색성장이어야 한다. 어느 나라든 이를 거부한다면 기상이변을 유발해 전 세계를 공격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결국 국제사회로부터 전쟁 수준의 엄중한 제재를 받게 될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일정 수준 이내로 통제하는 녹색성장은 이제 인류가 수용해야 할 수밖에 없는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이 됐다. 이 시대적 소명은 이미 겪은 정보화 세계화에 못지않게 엄중하다.

녹색성장시대의 국가 번영은 녹색기술의 선점에서 나온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나라가 등한시해온 녹색기술은 모든 나라에 전인미답의 신세계다. 모방할 대상이 없는 만큼 녹색기술은 창조를 통해서만 얻는다. 마침 정부의 국정목표인 창조경제는 녹색성장 부문에서도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다.

큰 돈 들여서 마련한 현재의 갈색 틀이 아직도 잘 돌아가는데 이것을 송두리째 버리고 새로운 녹색 틀로 바꾸는 일은 누구에게나 고통이다. 그러나 지금 가진 것에 연연하여 시간을 끌다가 다른 나라들이 먼저 고지를 선점해버리면 파멸이 순식간이다. 정확히 삼성전자에 뒤처진 소니 꼴이 되고 만다. 정부는 조세혜택과 보조금 지급 등의 당근 및 배출권 거래제와 자동차 연비규제 등 채찍을 잘 활용해 민간 부문의 역량을 녹색화의 길로 총동원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민간 부문이 녹색기술 개발에 활발하게 투자하도록 유인을 제공하는 일이다. 그런데 기존의 제도와 규제는 재래식 갈색성장을 지원하도록 형성돼온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을 목표 삼은 적이 없고 때로는 오히려 온실가스 배출을 조장한다. 에너지 정책은 산업화 지원을 위해 저에너지가격 기조로 일관해 왔는데 산업활동에는 도움이 됐지만 에너지 소비절약 유인은 크게 해쳐 놓았다. 마구 써도 큰 부담이 아닌데 에너지 절약의 기술개발 투자가 활성화될 턱이 없다. 온실가스 배출 절감이 최우선 과제인 시대가 됐어도 기존의 갈색제도가 이 시대적 과제의 걸림돌로 남아 있다.

온실가스의 제한 없는 방출을 방임하는 기술과 제도로 이뤄진 갈색 틀을 혁파하지 않으면 녹색성장은 불가능하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나서서 갈색산업을 정리하거나 아니면 에너지부를 산업부로부터 분리하도록 하는 큰 문제부터, 에너지 저장장치의 설치를 막는 소방법 개정에 이르기까지 갈색 틀에 대한 대대적 혁파작업이 필요하다. 갈색 틀이 그대로 남아 있는 한 녹색기술 개발의 창조활동은 제대로 피어나지 못한다.

이승훈 < 서울대 명예교수·경제학 shoonlee@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