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국내 부동산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봄기운 도는 한국 부동산에 대한 해외 시각
시장이 실로 오랜만에 침체 국면에서 벗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속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회복된다면 많은 국민이 원하는 문제가 해결되는 셈이다.

글로벌 부동산 시장이 살아나기 시작한 지는 비교적 오래됐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대출) 사태로 글로벌 금융위기 촉발 진원지였던 미국 주택시장은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미국의 대표 부동산 시장지표인 케이스-실러지수를 만든 사람이자 지난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가 거품을 우려할 수준까지 올랐다.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는 이유를 들여다보면 ‘체리 피킹’ 성격이 강하다. 체리 피킹이란 열등재나 기펜재(가격 하락에도 수요가 감소하는 재화)가 아닌 한 특정 상품 가격이 떨어지면 반드시 균형가격으로 수렴한다는 시장 원리를 감안한 저가 매수 투자전략을 말한다. 미국 집값만 하더라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직후 40% 이상 폭락한 지역이 많았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봄기운 도는 한국 부동산에 대한 해외 시각
인구통계학적 관점에서 은퇴하기 시작한 ‘베이비 붐’ 세대에 이어 ‘에코 붐’ 세대(베이비 부머들의 자녀세대)가 속속 주택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것도 집값 상승 요인이다. 한국 등 선진 신흥국에선 1970년대 중반~1990년대 초반 태어난 에코붐 세대 층이 매우 두껍다.

세계 부동산 가격 상승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정책요인이 가장 크다. 금융위기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재정지출, 금리 인하 등 전통적인 경기부양 수단은 바닥이 났다. 이럴 때 추가 경기부양이나 고용창출 등을 위해서는 ‘자산효과’에 의존하는 방법이 쉽게 손이 가는 정책수단이다. 벤 버냉키와 재닛 옐런 등 전·현직 미 중앙은행(Fed) 의장이 이 방법을 선호했다.

자산효과란 부동산 등 자산가치 변화가 소비와 경기에 미치는 긍정 혹은 부정적 효과를 말한다. 이 효과는 일반적으로 항상소득가설과 생애주기가설에 따른 소비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대부분의 가구는 전 생애에 걸쳐 소비 흐름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는 성향이 있다. 그런 만큼 현재 소득과 미래 기대 소득뿐 아니라 보유자산 가치 변화에 민감하다.

국내외 연구에 따르면 대체로 주택 자산효과가 주식보다 크다. 앨런 그린스펀 전 Fed 의장은 주식자산이 1달러 늘어나면 소비는 3~4센트 증가하지만 주택의 경우 10~15센트 증가한다며 주택 자산효과가 주식보다 세 배 이상 크다고 분석했다. 특히 집값 하락이 소비에 미치는 ‘역(逆)자산 효과’가 상승할 때보다 더 크다고 추정했다.

이는 금융위기 등 불확실성 시대에 중앙은행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입증해 주는 대목이다. 위기 발생 초기 경기나 자산소득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빅 스텝’ 금리 인하와 ‘헬리콥터 밴’ 식의 과감한 유동성 공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기가 어느 정도 단계에 도달하면 적기에 출구전략을 추진해야 한다는 점도 시사한다.

버냉키 전 의장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추진한 통화정책도 이 원칙에 충실했다. 위기 때 ‘부지런하고 과감한 중앙은행’은 경기 진폭을 줄이는 ‘안정화’(stabilizer) 역할을 해 위상과 신뢰가 올라간다. 하지만 ‘게으르고 소심한 중앙은행’은 정점을 끌어올리고 저점을 끌어내리는 ‘경기순응성’(procyclicality) 비판을 받게 된다.

국내 자산시장에 대한 연구는 결과의 일관성이 뚜렷하지 않다. 그러나 주택에 의한 자산효과는 실증적으로 관찰되고 있다. 주택 가격이 상승할 때보다 하락할 때 더 확실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환금성이 높은 아파트는 가격 변화에 따른 소비지출 변화의 탄력성이 0.23으로 미국(0.1~0.15)보다 훨씬 높게 나온다.

이는 한국도 경기 대책으로 자산효과를 중시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체감경기를 개선하기 위해 통화정책은 가능한 한 부동산 시장에 우호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중앙은행의 전통적 목표인 물가가 ‘D(디플레이션 혹은 디스인플레이션) 공포 우려’가 나올 정도로 안정됐을 때는 더욱 그렇다.

최근 들어 국내 부동산 시장이 회복될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작년 말까지만 해도 회복세인 세계 부동산 시장과 달리 한국만 따로 노는 ‘외톨이’ 현상이 심했다. 여러 가지 요인 가운데 한국은행이 정책금리 변경, 유동성 공급 등의 측면에서 선제적이거나 과감하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됐다.

국내 부동산 시장이 본격적인 회복 국면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한국은행이 보다 과감하게 나서야 할 때다. 정책금리가 9개월째 동결된 상태지만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조만간 내릴 것으로 계속해서 내다보는 것은 이 같은 기대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