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부작용만 키우는 금융당국
“대책 발표에 급급하다 보니 시장에 엉뚱한 불똥이 튈 줄 몰랐겠죠?”

한 보험사 영업본부장은 최근 이렇게 말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사상 최악의 고객정보 유출 사건 이후 금융당국이 금융사의 전화영업(TM·텔레마케팅)을 금지한 게 무리라는 얘기를 하면서다.

신용카드사의 고객정보 1억여건이 유출된 사건이 일파만파로 확대되자 금융당국은 부랴부랴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놨다. 전화를 통한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TM 비중이 70%를 넘는 일부 보험사를 제외하고 다음달 말까지 TM을 전면 금지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파장은 컸다. 당장 전화영업으로 먹고사는 텔레마케터와 대출모집인 10만여명이 생계를 잃을 처지다. 금융당국이 서둘러 기존 상품을 갱신하는 영업에 대해선 TM을 허용하고 텔레마케터를 해고하지 말도록 당부하고 나섰지만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텔레마케터들은 성과에 따라 돈을 받는다. 고용이 유지된들 영업을 하지 못하면 수입을 잃는 구조다.

롯데카드 콜센터에서 6년째 텔레마케터로 일하는 박주환 씨(52)는 “남편이 실직한 이후 두 자녀를 키우기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데 당장 생계가 막막해졌다”며 “금융사고가 난 건 카드사이고, 금융사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한 건 금융당국인데 왜 피해는 텔레마케터가 보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감독권이 제대로 미치지 않는 보험대리점 등에서는 벌써부터 텔레마케터를 해고하고 있다. 한 소형 보험대리점 임원은 “당장 문을 닫게 된 판국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항변했다. 일부 외국계 보험사는 본사 차원에서 우리 금융당국에 유감의 뜻을 밝혔고, 텔레마케터들은 항의 집회를 예고하고 나섰다.

이군희 서강대 교수(경영학)는 “이메일, 문자, TM 등의 영업 자체를 금지하는 게 당장 통제 차원에서는 편할 수 있겠지만 합법적인 금융시장마저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2차 피해를 막아 국민 불안심리를 잠재우겠다는 금융당국의 충정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이로 인해 엉뚱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을 누가, 어떻게 보상할지 걱정된다.

김은정 금융부 기자 kej@hankyung.com